작성일 : 14-04-08 21:23
[7기] OKOVO 활동 후기
 글쓴이 : 12김수진
조회 : 12,814  



◎ 7기 손창원
어느새 벌써 시간이지나 후기를 쓸 시간이 되었네요. 7기 OT했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이번 제11회 오타루 눈빛거리축제에 저는 1조 조장으로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조장이라는 부담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것은 설렘과 기대감이 너무 컸기 때문에 거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처음 윈켈에 도착했을 때의 설렘과 흥분은 아직도 잊혀지질 않네요.
사실, 가기 전에는 은근히 힘들다는 OB분들의 말들이 제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었죠. 하지만 설상작업을 했던 2월 2일부터 2월 5일까지는 정말 은근히 힘이 들었습니다. 항상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피곤해서 잠이 들어버릴 정도였죠.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조장회의가 끝나고 나면 피곤은 사라지고 몸에 다시 활력이 돌기시작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 힘으로 OKOVO식구들과 같이 새벽을 맞이하고.... 지금 새벽2시만 되면 졸린데, 그때 생각하면 참 신기합니다.
모든 것들이 기억에 남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들을 진짜 친한 친구처럼 동생처럼 대해주었던 일본사람들입니다. 같이 작업하다가 나눠먹을 간식거리들이 있으면 항상 챙겨주고 웃어주고 하시던 그 많은 분들이 기억이 나네요. 참 신기한건, 일본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는 저와, 한국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던 사람들과 어떻게 웃고 떠들고 친해질 수 있었는지..... 진짜 신기합니다. 많이 생각나구요.
작업장에서의 활동들도 많이 기억에 남지만, 윈켈에서의 생활도 너무나 기억에 남습니다. 군대 이후로 그렇게 10명이 넘는 인원이 17일 동안 동고동락한 경우는 처음이었으니까요. 술 한잔 기울이고, 이런 저런 얘기 해가면서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우리는 점점 情이라는 것으로 묶여가고 있었습니다. 비단 우리 조 내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조들, 그리고 놀러온 일본사람들에게 까지도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축제는 정말로 저에게 많은 것들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기억에 남고 그리워하는 것 같네요. 정말 그곳에서의 1분 1초도 놓치고 싶지 않은 그런 기억들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었다면, 일본어. 일본어만 조금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알았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이러한 아쉬움이 저를 일본어를 공부하도록 만드네요. 나중에 다시 갈 때에는 아쉬운 점이 남지 않게끔 열심히 공부해야겠습니다.
왜 OB분들이 몇 년째 계속 가고, 왜 우리 7기들을 부러워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저는 럭키가이인가 봅니다. 이제라도 오코보를 알게되었으니 말이죠.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들 속에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게 만들어준 ‘오타루 눈빛거리축제’.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 7기 송현정
오늘도 어김없이 지하철을 타며 익숙한 풍경을 눈에 담는다. 북적북적한 지하철 칸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메마른 겨울나무 가지가 늘어선 철로를 바라보는 나는 지난 2월 아름다운 긴 꿈을 꾼 것 같다. 오타루에 다녀온 그 17일 동안의 기간이 나에겐 깨고 싶지 않은 꿈처럼, 다시 펼쳐보고 싶은 추억의 사진첩과 같다. 17일의 기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가기 전엔 미처 알지 못했다. 살며시 눈을 감으면 너무도 많은 것들이 내 눈 앞에 있는 것처럼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립고도 그리운 윈켈 숙소와 내 어린 시절에 보았을 법한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오타루의 겨울하늘, 오코보 식구들과 하얀 눈덩이와 웃음을 모아 만든 설상들, 시원한 맥주를 함께 마셨던 일본인 친구들과 중국팀 친구들, 오타루 거리에 울려 퍼지는 오르골과 운하 곳곳을 비추던 은은한 촛불하나하나, 우리가 작업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선물로 직접 인화해 주셨던 고마운 분들, 꽁꽁 언 손발과 털모자에 내려앉은 눈을 녹였던 운하 프라자의 따뜻한 온기와 향긋한 원두커피 향기, 작업 중간중간 언 몸을 녹여주었던 따뜻한 코코아와 밀크티, 하루하루 서로를 알아가고 의지하며 가족이 되었던 사랑하는 우리 조원들, 최강 OB들(엄마의 손맛처럼 항상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었던 입담최고 요리사, 달콤한 휴식보다는 참된 일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었던 댄싱퀸 유고걸, 10번 중에 한번 터지는 입담과 손수 쓴 편지를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던 균데렐라), 축제기간동안 가장 예쁘고 밝게 빛났던 운하B와 부끄러움 타는 스즈키상까지..., 이 많은 것들을 이렇게 그리워할 줄은 몰랐다. 오타루에서 만난 모든 것들이 한국에 돌아와서도 더욱 더 그립고 소중한 것으로 다가온다. 하나를 떠올리면 다른 하나가 꼬리를 물고 또 다른 하나가 꼬리를 물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행복해 지는 나를 발견한다. 물론 가끔씩 추위 때문에 몸도 마음도 지치기도 하고 힘든 마음이 앞설 때도 있었지만 작업을 마치고 버스에 올랐을 때 본부 앞에서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손이 저릴 정도로 힘차게 손을 흔들던 일본인 자원봉사단들과 버스에 내렸을 때 보금자리처럼 항상 그 자리에서 우리를 맞이했던 윈켈 숙소가 있었기에, 그 숙소 안에서 시끌벅적했던 오코보 식구들이 있었기에, 그날 작업의 고단함은 항상 눈 녹듯 사라진 것 같다. 또한 오타루를 가기 전에 조금 걱정되었던 것은 서툰 일본어 실력이었지만 함께 작업을 했던 일본 봉사단 분들과 흥겹게 “おつかれさまです(오쯔카레사마데스)”를 외치고 서로 장난도 치기도 하고 축제 마지막 날 송별회에서 일본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눈시울을 붉힐 때 나는 내가 했던 걱정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어란 것이 서로의 의사소통을 할 때 편리함을 주는 것이지 서로의 마음을 전하고 친구가 되고자 할 때 전혀 장벽이 되지 않음을 느꼈다. 운하B에서 메인설상과 보조설상, 공동설상을 만들며 축제를 준비하는 기간에서부터 여러 운하를 돌며 아름다운 눈빛거리 축제를 돕는 자원봉사단으로 활동하는 기간까지 나는 아름다운 눈빛과 세계 곳곳에서 온 관광객들의 따스한 웃음을 보면서 뿌듯함과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다. 처음에 그곳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은 오타루 눈빛거리 축제가 작은 도시인 오타루에게 크나큰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있었고 거의 대부분의 지역 사람들이 함께 자발적으로 동참하여 축제에 참가한다는 것이었다.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나는 단순히 축제를 즐기러 온 것이 아니라 축제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서 내 손으로 만들어 나간다는 사실이 더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이제 올해 축제가 끝이 나고 오타루에서 내리던 눈도 그쳤다. 그리고 나는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곳에서 시작된 인연이 한국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쭉 이어져 나갈 것임을 알기에 오타루라는 내 인연의 첫 시작점을 난 잊지 못할 것 같다.      오늘도 나는 하얀 눈이 펑펑 내리던 오타루를 그리워하고 있다.........

◎ 7기 김이슬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야. 그러니까 기대하지 말고 가야 해.’
‘일본이라는 나라는 무서운 나라야. 조심해야 해.’
  이 모든 나의 선입견이 17일동안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오타루를 알기 전의, 오코보를 알기 전의 나는.
  출국 전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뜬 눈으로 지새우지 않았다. 오코보 식구들과 애써 먼저 연락하지도 않았었다. 그저 적당히 친한 사람 몇 명 만들어 돌아오자는 나의 이기적인 마음은 공항에서 무너져 버렸지만.
  윈켈에서의, 각 회장에서의 오코보는 매일매일, 아니 매시간 내 마음을 움직였다. 오타루의 정적과 그 고요함을 쓰다듬는 흰 눈 속에서 내 속에 쌓아두었던 얼음장  은 벽은 허물어졌다. 억지로 웃음지어야 했던 다른 단체 속의 나는 없었다. 오코보의 2009년 2월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이해관계에서의 사람과 사람이 아닌, 순수한 우리라는 울타리를 배웠다.
  도쿄 여행에서 길을 물을 때마다 한국인을 매몰차게 거절하던 일본은 없었다. 마치 시골 어르신들을 보는 듯, 손을 불어가며 감자와 떡, 고기를 정겹게 나누어주시던 할아버지, 할머니들만이 가득한 오타루, 일본 속의 또 다른 일본이었다.
  10명 가까운 사람들이 한 집에 살면서 타인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는 것, 그 안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는 것, 타국에서 서러움, 향수병 없이 건강하게 여러 날들을 매일 웃으면서 지낼 수 있었다는 것,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였다는 것. 이 모든 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은 아닐까. 그저 아쉬운 마음뿐이다.
  일본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힘들던 날보다, 손발이 얼어붙어 머리가 지끈지끈했던 날보다, 그것들을 한 눈에 잊어버릴 수 있게 17일을 함께 해 준 오타루의 잊지 못할 눈과 오코보 단원들, 일본의 천사들과 함께 해 행복했던 날이 많음에 웃음지을 수 있었다.
  한국 땅을 밟는 순간 알아버렸다. 내가 오타루의 공기에 꽤 많이 익숙했다는 것을. 2010년 2월, 다시 느끼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시간을 돌리고 싶다.

◎ 6기 전선율
오타루. 오타루. 오타루. 오타루. 오타루. 오타루. 오타루. 오타루……. 2008년 2월 오타루를 다녀온 이후 내 입만 열면 오타루 얘기 뿐 이였다. 그만큼 오타루는 나에게 있어 너무나 큰 의미이자 행복이었다. 사실 작년에 오타루를 떠날 때는 내년에 당장 오타루에 오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오타루의 기억들과 그 곳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그냥 환상처럼 느껴져서... 꿈을 꾸고 난 듯해서... 그냥 예쁜 추억으로만 가슴에 담아두고 싶었다. (물론 돌아와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오타루가 너무 그리워서 미쳐 버릴 뻔 했지만^^) 그래서 다시 가기로 결정 했을 때도 오타루에 대한 나의 그 환상이 깨질까봐 걱정도 많이 하고 괜히 두렵기도 했었다. 하지만 역시 오타루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윈켈에 도착하자마자 회오리치던 눈 사이에서 우릴 반겨주던 일본사람들. 작년에 봤던 사람들이 나에게 오랜만이라면서 반갑게 인사해주는데... 나의 걱정과 두려움은 한 번에 말끔히 씻어 내리는 듯 했다. 하얀 세상. 눈이 내리고. 따뜻한 일본 사람들이 있고. 따뜻한 윈켈이 있고. 아 이곳은 오타루였다. 내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오타루. 윈켈에 와서 눈밭에서 뒹굴고 나니 실감이 났다. 역시 오타루에 다시 오길 잘했다고 백번도 넘게 되뇌며...
올해 오타루도 나에게 감당하기 힘든 따뜻하고 소중한 추억들을 안겨주었다. 그 누구보다 크게 웃으며 너무 즐거웠고, 행복했었다. 이번에는 꼭 후회 없이 아쉬움 없이 활동 하고 오고 싶었는데... 역시나 후회 되는 것이 너무나 많다. 일본어를 공부하지 못하고 간 것이 아쉽고, 더 적극적으로 솔선수범해서 일하지 못한 것도 아쉽고, 삽질을 더 열심히 못한 것도 아쉽고, 스노우 캔들을 더 스피드하게 만들지 못한 것도 아쉽고, 오코보 사람들과 더 많이 이야기 해보지 못한 것도 아쉽고, 일본 사람들. 중국 자원봉사자들과도 더 친해지지 못한 것도 아쉽고, 클라쎄 온천에서 눈으로 세수 못 한 것도 아쉽고, 푹신푹신한 눈에 수영 못한 것도 아쉽고, 내가 좋아하는 썰매 마음껏 못 탄 것도 아쉽고, 음식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요리를 많이 해주지 못한 것도 아쉽고, 배꼽 빠질 만큼 재미난 상황을 찍지 못했던 것도 아쉽고, 오타루눈빛거리축제를 내 눈에 내 마음에 더 담지 못한 것 같아 아쉽고... 지금 생각 하면 아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언젠가 오타루가 또 미친 듯이 그리워질 때 쯤. 몇 년 후에 반드시 다시 찾을꺼니까!!! 오타루에서 함께한 아름다운 17일의 시간들. 나는 그 아름다웠던 시간만큼 이 잔인한 후유증을 평생 품고 살아야 할 것 같다.

◎ 7기 박홍선
오타루에서 지냈던 시간들이 꿈만 같다. 벌써 아득한 옛날처럼 그립다. 사진 정리를 하고, 오타루에서 썼던 일기들을 몇 번이나 꺼내 보면서 몸은 비록 한국에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오타루에 머물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언뜻 평범한 사진 속에서도 몇 십가지의 추억을 발견해내어 생각하곤 한다. 장소에서 비롯된 기억부터 우리가 웃고 떠들었던 이야기까지 모두 다 그리워진다. 3층 다락방 내 자리 이불 속에서 눈을 감고 있을 때의 그 감촉까지 생생하다. 잠이 많았던 나는 항상 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눈을 뜨기 전에 경쾌한 선율언니 웃음소리와 창훈오빠의 기상송 때문에 무겁던 내 눈도 번쩍 뜨였던 것 같다.
지금도 눈을 뜰 때마다 여기가 윈켈 다락방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종종 스토브가 고장나 추웠지만, 그 곳이 더 포근하고 아늑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오타루에 갔다 온 뒤 전에 없었던 버릇들이 많이 생긴 것 같다. 오타루에서 듣던 음악들을 찾아서 나도 모르게 혼자 웃고 있거나, 눈이 내리면 혼자 우울해 하거나. 오타루에 다녀와서 집에 도착한 그 다음날, 몇 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눈이 펑펑 내렸다. 엄마는 내가 눈을 몰고 온게 아니냐며 신기해했다. 옷을 주섬주섬 껴입고 밖에 나가 한참을 눈 맞으며 오타루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추억을 한참동안 서성거렸던 것 같다.
내가 지금 이 순간 가장 아쉬운 게 있다면 일찍 잔 날들이다. OB였던 선율언니가 왜 그렇게 자는 시간을 아까워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한 시간이라도 더 저장할 수 있는 기억을 만들어 놓는거였는데...
하루라도 오타루가 그립지 않는 날이 없다. 휴대폰에 있는 사진과 배경화면에 저장된 윈켈 사진을 보며 날마다 다른 날, 다른 추억을 꺼내고 있다. 17일동안의 기억만으로 평생을 그 추억을 떠올리며 살아갈 수 있을 듯하다.

◎ 7기 이지혜
일본 오타루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이 넘어가는 오늘도 나는 여전히 수백 개의 사진을 보며 돌아가고 싶은 17일 간의 추억에 잠기고 있다. 처음 이 자원봉사를 신청하고 나서 가기 전까지는 그냥 그렇겠지, 좋겠지, 그런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가족이 되고, 며칠이 지나도록 서로 보고 싶다고 하며, 그리워할 줄은 몰랐다. 한국에 돌아와서 친구들을 만나도 오타루에서 있었던 일, 사진을 보여주면서 자랑을 하고, 친구들은 그렇게 좋았냐며 정신 좀 차리라며 핀잔을 주지만 나는 마냥 그립고 그리울 뿐이다.
  그저 한숨 푹 자고 나면 우리 집 윈켈 A-3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 돌아온 후로 마지막 날 공항에서 밤을 새서 그런지 시차적응이 아닌 적응을 못하고 있는데 아침에 일찍 제시간에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시계를 보면 ‘아 오늘도 또 늦잠 잤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창원오빠가 3층으로 올라와서 “애들아 일어나”라고 하면서 자명종 시계를 갖고 다니는 게 생각나, 혼자 일어나는 게 낯설고 어색하다. 3층에서 자던 사람들이 주섬주섬 눈치를 보면서 2.5층이나 2층에서 내려가 씻을 순서를 기다리며 졸고 있던 생각이 나고, 씻은 사람은 후다닥 1층으로 내려가 음악을 크게 틀고 아침 식사를 하고, 유자차를 마시던 생각이 난다. 아침의 티타임도 잠시 축제 후반에는 창원오빠가 혀를 낼름 거리면서 “애들아 5분 남았어, 서둘러 나가야해.”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시계를 보면서 컵라면이나 밥을 먹고 있던 모습이 생각난다. 결국은 장갑, 초콜렛, 사탕, 오리털 실내화를 봉지에 한꺼번에 모아 옷도 제대로 못 입고 1분전 후다닥 나가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한 번도 버스를 놓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역시 스릴 넘치는 아침 버스 타기!
  본부에 가서 물과 휴지 카라멜을 주머니에 마구 쑤셔 넣고 일할 회장으로 가서 일본 봉사자들과 함께 수다 아닌 수다를 떨던 것이 생생하다. 내가 생각해왔던 일본 사람들과는 달리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오코보 사람들처럼 너무나 친절하고 호의적이었다. 우리가 일본어를 못하거나 일본사람이 한국말을 잘 못해도 서로 통역해주고, 깊은 대화는 아니었지만 손짓 발짓을 해가면서 연락처를 주고 받던 것이 생각난다. 다만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나는 그 모습을 구경만 했다는 것, 난 역시 쉽게 친해지지 못해 연락처도 주고받지 못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메일 주고 받고 하는 것을 보니 조금은 부러웠다.
  열심히 설상 보수 작업을 하고난 후 4시 반이 되면 불을 붙이고, 저녁 먹고 난 후에도 꺼진 불을 찾아 불을 붙이고, 9시가 되면 빈 양동이를 들고 다니면서 양초를 수거하던 것이 너무나 생생해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시계를 보면 일하던 시간이 생각난다. 일본, 중국, 한국 봉사자들과 밤 9시에 일을 마치고 “오츠카레사마데시다!”를 외치면서 박수를 치고 본부에 가서 잠시 몸을 녹이고 버스를 타고 윈켈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그 즐거운 시간이 생각난다. 버스에서 내려서 우리집 2층 샤워실 문을 붙잡고 순서를 외치기 위해 달리기 시합을 하던 모습도 생생해, 뛰어오다가 넘어지고, 현관문에 세 명이 달려들어서 끼던 것도, 별것도 아닌 걸로 치열했던 그 시합이 그립다.
  1층에서 조장회의를 시작하면 2층에서는 고스톱 판이 벌어지고, 배꼽잡고 쓰러지면 창원오빠는 좀만 조용히 해달라고 매일같이 올라오던 것도 생각난다. 조별회의도 끝나고 샤워도 끝나면 마스크팩을 하면서 한 두시간 푹 쉰 후에 1층으로 내려가 맥주 한잔을 하면서 수다를 떨던 우리조가 그립다. 들리는 노래 분위기에 따라서 흥겨웠다가 차분해졌다가 “아~ 생각난다!”라면서 한국에 두고 온 누군가를 그리워하던 언니오빠들 모습이 생각난다. 우리 조만의 낙서장에 분위기에 맞춰서 낙서를 하고, 아침에 대폭소하면서 구경하던 것도 생각난다. 한국에서 보면 또 다른 기분으로, 추억을 되새길 수 있을 것 같다. 길 가다가 우연히 들리는 음악에도 ‘아, 이거 윈켈에서 듣던 윈켈송인데’라면서 그 때 그 추억에 빠져들고 있는 나는 다음 주, 개강하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하지만 이런 그리움과 아픔도 아름다운 추억이 되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관광할 시간이 모자라도! 시간이 촉박해도! 춥고 배고픔에 떨어도! 밤 8시 30분에 몰래 불을 끄고 양초를 마구 마구 걷고 싶어도! 우리 집 식구들과 함께라면 그저 즐거울 것 같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상에 돌아와 있지만 난 아직도 시계를 보고 그 곳 생활이 생각나고, 눈이 없는 창밖을 보면 낯설기만 하다. 그 곳에서의 추억이 점점 잊혀 간다는 게 아쉬워서 사진이나 동영상을 열심히 찍었지만 어쩔 수 없이 점점 흐릿해져 간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프다. 모든 순간, 순간이 소중했던 것 같다. 그 곳도, 그 곳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이런 소중한 인연들과 오타루에서 한 순간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계속 또 다른 추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 7기 최대현
09년 2월 우리들의 임무가 시작되었다.
모든 준비(설상계획과 함께 17일간 먹을 식량, 추위를 막아줄 방안도구 등)를 마치고 마음에 준비를 단단히 하고 인천공항 출국장에 발을 내딛었다.
긴장과 기쁨의 애매모호한 표정과 함께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설레임으로 묘한 기분을 받으며 비행기에 올랐다.
훗카이도의 삿포로공항. 도착하자마자 차가운 냉기가 우리를 먼저 받아주었지만 단원들의 열정과 흥분으로 추위를 잠재워버리는 것 같았다.
오타루로 가는 길 해안도로를 달리는데 눈이 흩날리면서 바다가 보이는 풍경은 실로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윈켈에 도착한 우리는 각자 부여된 펜션으로 짐을 풀고 내일부터 시작되는 설상제작과 함께 유키아카리노미치 축제 관계자, 일본자원봉사자들과의 만남에 대한 설레임으로 그날 밤은 늦게 잠이 들었던 것 같다.
활동의 시작 1일째,
오타루 날씨는 최악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들이 오기 이틀 전 눈이 아닌 비가 와서 운하B를 포함한 모든 회장이 얼음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악조건에서도 각 조들이 맡은 설상을 최대한 표현하기 위하여 남자들은 열심히 삽질을 하고, 여자들은 세밀한 세공작업에 들어갔다.
활동의 시작 2일째,
무한삽질로 설상의 틀이 잡히고 여자들의 세밀한 세공작업으로 모양을 갖추어 가는 중 남녀차별운동을 벌이는 마냥 세공작업을 남자가, 삽질을 여자가 하는 모습도 간간히 보였다. 힘든 작업 속에서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이마에서 땀이 흐르고 시간이 가는지 모르게 일을 하였다.
활동의 시작 3일째,
여전히 무한삽질. 설상제작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모든 설상이 모습을 갖추었고 우리조의 제주도 역시 용두암의 모양이 용으로 변하기는 했지만 제법 입가에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들었다. 이제는 내일부터 불을 켜고 어떤 모습일지 상상을 하면서 설상들을 둘러보니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뿌듯함이 몰려왔다.
축제의 시작. 10일간의 노력.
설상보수와 함께 일본관계자분들과의 만남, 자원봉사자 분들과의 소통 및 초에 불 켜기.
어두운 밤. 촛불로 길을 밝히고, 촛불로 비추어지는 설상들의 모습, 그 속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적인 관리와 축제를 보러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더욱 멋지고 예쁜 모습을 보여주기위해 노력하는 봉사자들과 우리들의 모습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추위 속에서 고생하고 한국 생각도 나고 근육통에 몸은 지쳐가지만 밤만 되면 살아나 사람들과 대화, 일본자원봉사자들과의 만남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활기를 찾아갔다.
쉬지 않는 작업과 추위 속에서 포기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지만 ‘오츠카래사마데스’ 일본자원봉사자들의 격려와 모든 봉사자들의 격려 속에서 포기라는 생각은 눈이 녹아내리듯 사라지고 마음속 작은 불꽃은 활활 타올라 주변사람들의 마음속에 옮겨 붙게 하였다.
축제의 끝. 그 이후
저녁 9시면 어김없이 촛불을 끄는 작업을 실행한다. 그 시간만큼 누구보다 빨리 촛불을 끄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축제 마지막 날 9시 축제 폐막 폭죽쇼와 함께 촛불을 끄는 작업에 들어갔는데 이날만큼은 왠지 촛불을 끄는 작업이 우리들의 마음속 뜨거웠던 열정을 끄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차츰차츰 어두워지는 회장과 함께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우리들의 모습이 즐거웠던 시간 속에서 어두운 현실로 들어가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어두운 곳에 모두들 하나의 불꽃을 가지고 있고 그 불들이 모두 모여 환한 불빛을 만들어 희망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생각을 하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물, 고생, 아쉬움, 그리움, 헤어짐
웃음, 행복,  만족,   웃음,  만남
사람 (추억ㆍ기억) - 많은 것을 배웠고 사람이 힘이 되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 7기 김미영
서울로 돌아온 지 벌써 열흘이 되어가지만 내 몸은 아직도 오타루를 잊지 못하고, 늦은 저녁만 되면 배가 고프다고 난리를 친다. 나온 배를 보면서 한숨이 쉬어지지만 뱃속이 허전한 건지 마음이 허전한 건지 자꾸 허기가 진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씻기 전에 가위바위보를 하고 싶고, 아침에는 창훈 오빠의 수제모닝콜로 일어나고, 자꾸 스팸요리가 먹고 싶으며,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프리티 걸에 두 손 들어 춤추고 싶고, 화장실에 갈 때 면 열정과 스트롱 베이비의 리듬에 맞춰 장단을 맞춰주던 상운오빠랑 창훈 오빠의 기합소리가 귓가에서 맴돈다. 요즘에는 TV에 일본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눈에 많이 띄고, 심지어 오타루와 징기스칸 요리가 자꾸 나온다.
이게 바로 가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OB들이 빠져있던 오타루즘인가보다.
아침에 원두를 내려주면서 은근한 커피 향을 풍기면서 이케멘이고 싶었던 창훈 오빠, 내년이면 스노우 캔들 속도를 스즈키상을 뛰어 넘을 수 있다는 나이를 잊은 상운 오빠, 항상 좋은 것 비싼 것 많은 것만 먹는 은근 대식가 상현 오빠, 원하지 않게 팬티로 큰 물의를 일으켰던 중용이, 한번 웃어주면 온 동네 웃음바다를 만들어주는 선유르르, 쇼핑중독과 장 문제로 나와 함께 고생하던 지혜언니, 두영 오빠랑 대작으로 이겨보려고 하고 발렌타인데이날 30분 동안 같이 걸었던 홍써니, 온 몸으로 귀엽지만 소리 없이 강한 현진언니, 물갈이로 고생하고 스티커사진 표정을 잊을 수 없는 이브 서영언니.
이대로 라면 내년에도 우리 조원 그대로 다시 가야하는 것 아닐까.
다른 조원들도 물론 매우 즐거웠겠지만 2조가 정말 제일 짱인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 7기 유나경
  2월1일 우리의 꿈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원래 그다지 감성적이지 못한 나는 한없이 내리는 눈에 잃어버렸던 나의 감성이라는 녀석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질척거리는 눈이 너무나도 싫었었고, 미끄러운 빙판길도 너무 싫었었다. 하지만 까만 하늘에서 소리 없이 내리는 흰 눈은 내 얼굴위로 떨어지고, 하얀 눈 사이에서 빛을 내는 촛불은 내 감성을 되돌아오게 하는 시작이 되었다. 인적이 끊긴 아사리가와에서 맛본 눈 내리는 겨울밤은 사진으로도 담지 못할 정도의 아름다움이었다. 그 아름다움을 가지고 오지 못한다는 아쉬움에 나는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눈 내리는 하늘 아래서 곱게 불을 내고 있는 하나의 촛불은 그 자체로 충분히 고결했다.
매일이 이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하루가 긴 날도 있었다. 비바람이 부는 날씨에 하루가 질리도록 긴 날도 있었다. 누군가의 장난에 설상이 무너져 복구할 수 없었을 때 이따위 것 다 그만 하고 싶은 날도 있었다. 큰 비에 설상이 다 무너져 내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했을 때 모든 것을 관두고 싶었다. 하지만 내 주위에는 소중한 운명의 인연이 있었고 나는 견딜 수 있었다. 우리는 시간이 가는 것을 아쉬워했고 1분 1초가 소중했다. 아침에 흘러나오는 노래, 창원오빠의 ‘일어나’라는 목소리, 일어나서 10분 이상 멍 때리고 있는 우리, 모자 바꿔 쓰는 우리, 1층에서 아무렇지 않게 옷 입는 우리, 5분 전에 태연하게 라면 끓이는 우리, 1분전에 장갑, 초콜릿 챙기는 우리, 그리고서는 미친 듯이 버스정류장으로 뛰어가는 우리, 잠바가 바뀌어 자기물건 찾는 우리, 버스에서 사진 찍는 우리, 삽질하는 우리, 돌아오는 버스에서 서로 빨리 내리겠다고 앞자리 차지하는 우리, 샤워 순서 때문에 버스에서 뛰어 내리기에도 바쁜 우리, 달려가다 문에 끼어서 한참동안 못 움직이는 우리, 조장회의 하는 동안 매번 화투쳐서 아이스크림 13개 만들어 놓은 우리, 그러다 너무 시끄러워서 창원오빠에게 매번 주의 받았던 우리, 진지하지 않은 조별회의, 팩하는 우리, 90년대 노래 찾기에 열중한 우리, ,,, 그 모든 모습이 소중했다.
혜빈이와 종타쿠가 해준 맛있는 떡볶이가 있었고, 3조에서 출장요리사 희범오빠의 맛있는 닭요리가 있었다. 술도 잘 안 마시다가 한방에 맥주, 소주를 다 마셔버린 날도 있었다.
힘든 나날 체력이 무너져갈 즈음 날카로워 진 신경에 다툼도 있었다. 하지만 오타루였으니까 할 수 있었던 다툼이었고 진지 해 질 수 있는 기회였다.
매일 쉬는 것 같지만 자신의 일은 다 하고 쉬는 세심한 종타쿠, 매번 분위기를 업 시켜주는 거절 못하는 준철, 엄마같이 잘 챙겨주는 데굴데굴 구르며 웃는 창원, 초점 없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득, 단장일 하느라 바쁜데 맛난 거 가끔 챙겨준 애교 쟁이 두영, 부엉이와 버섯을 만든 요리 잘하는 주현, 겁나 사악하면서 안 사악한 척 하는 혜빈, 다리를 토치로 지지고서도 정신 아리마셍한 윤희, 사랑하는 내 반쪽 지영, 화투에서 져 천민이 된 정주, 귀여운 고양이 가방 산 귀여운 내 마니또 지혜... 이들이 내 주위에 있었다.
내가 17일 동안 얻은 것은 눈에 담기에도 벅찬 아름다움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인연이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순간을 함께 보낸 당신들이 너무 고맙습니다.

◎ 7기 우창훈
한국에도 눈이 내릴 즈음 , 오코보 단원들을 ... 아니 식구들을 처음 만났다. 서로 새로운 만남에 대한 동경,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들떠있었고... 그것들을 조금씩 느끼고자할 때 새날을 기약하며 서로에게 기다림 하나씩을 얹어주었다. 그리고 촛불을 밝힐 때쯤, 다시 만난 그들의 얼굴은 눈빛 꿈에 대한 기대로 상기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타루... 꿈을 조각하며 서로의 마음에 설레임 하나를 조심스레 켜두었고 그 설레임이  꺼지지 않기 위해 밝히고 또 밝혔다.
같은 아침을 맞이하고 같은 따스함을 감싸 안으며  눈빛 꿈에 젖었던 그간의 행복도 잠시, 서로의 마음에 설레임을 꺼두고 그리움을 밝혀야할 때 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아파함을 꺼질세라... 밝혀주고 있었고 서로를 밝혀준 만큼 녹아드는 가슴은 예정되있던 헤어짐을 담아내지 못하고 결국은 눈시울로 쓸어내리었다
햇살같은 행복, 바람같은 감싸줌, 안개같은 그리움 , 노을같은 따스함 , 눈빛같은 설레임, 그들의 떨림과 눈빛을 담아준 흩날리던 시간들을... 당신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꺼지지 않을 2009년의 그 겨울을... 평생 가슴에 적셔두겠습니다. 사랑합니다 ! O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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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키키 20-07-16 03:24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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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een now and Opening Day my fellow CBS Sports MLB scribes and I will bring you a weekly roundtable breaking down, well, pretty much anything. The latest news, a historical question, thoughts about the future of baseball,<a href="https://www.toto109.com" target="_blank" title="메이저놀이터">메이저놀이터</a> - 메이저놀이터</p> all sorts of stuff. Last week we discussed our ideal number of postseason teams. This week we're going to tackle our favorite underd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