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열정 가득했고 바쁘게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던 나의 20대. 그 끝자락에서 태어나 처음 느낀 무력감은 대학에서 가득 차있던 내 자신감 끌어 내렸고, 그 무렵 오코보를 알게되었다. 어차피 내 시간은 딱히 정해진 것 없이 그저 흘러가고 있었고 어쩌면 이 활동이 다시 한 번 내 삶이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많은 고민 끝에 지원해 19기 단원으로서 오타루에 가게 되었다.
오타루로 출발하는 날까지도 많은 것이 걱정스러웠다. 이미 단체생활은 꽤 익숙한 나였지만 오타루에서 보낼 앞으로의 17일이 어떨지 전혀 예상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해 가장 먼저 마주한 홋카이도의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풍경이 내 마음을 잠식한 이 검은 불안을 수줍게간질이며 점점 하얗게 물들여왔다.
태어나 봤던 모든 눈을 다 합쳐도 모자랄만큼 온 세상에 가득했던 오타루의 눈은 마치 다른 세상에 온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 내게 닥친 현실과 구분된 듯한 이 곳에서는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곧이어 3일간 이어진 설상 제작 작업은 눈이 생각보다 많이 쌓이지 않고 예상보다 날이 따뜻했던 등 변수가 참 많았지만 노련한 OB들과 유쾌한 YB들이 함께였기에 모두가 참 즐겁게 작업에 임할 수 있었다. 특히 축제에 참여하는 봉사자의 모습 그 자체가 이미 오타루 눈빛거리축제라던 그 말이 참 인상깊었다. 시종일관 웃으며 유쾌하게 작업하는 우리의 모습이 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의 일부분이 된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열정적으로 만들었다.
특별히 어려운 작업은 없었지만 장시간 야외에서 눈과 물을 만지며 작업을 하다보면 다들 지칠 법도 한데 작업 하는 내내 춤이 절로 나고 노래가 절로 나오고 웃음이 절로 났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오코보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웃음과 활력을 주는 존재였기에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
축제 기간동안 이어진 설상 보수작업, 스노우캔들 제작, 토치메이트와 짝을 이루어 회장을 돌면서 꺼진초에 불을 다시 붙이는 작업과 모두의 안전을 위해 얼어붙은 땅을 깼던 작업 하나하나가 이 축제의 일부. 그렇기에 초에 불을 붙이고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작은 동작 하나하나가 소중했고 봉사에 임하는 내 마음가짐도 점점 그 무게를 더했다.
2번의 교류회와 웰컴파티, 페어웰파티에서의 일본, 대만 봉사자들과의 교류활동은 몇 년만에 재개된 축제의 여파로 약간의 시행착오를 겪은 듯 했지만 나름대로 충분히 서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교류활동 덕분에 생긴 또 다른 소중한 인연들이 많았기에…
미래를 위한 선택에 있어서 나를 망설이게 했던 모든 걱정은 아마 오타루의 깨끗한 눈이 전부 덮어 버려 흔적조차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활동을 통해 사회생활 속에서 느낀 권태로 잃어버렸던 내 자신을 다시금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온전히 나로서 내 자신을 가감없이 드러낼 수 있는 곳이 바로 오코보였고,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아의 해방감 덕분에 잃어가고 있던 자신감을 꽤 많이 회복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무엇이든지 부정적인 면을 먼저 바라봤던 내가 사람과 상황의 좋은 면을 먼저 보려고 노력하게 되었고,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나면 느껴지던 초조함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고생한다며 요구르트를 건네주시던 오타루 주민 아주머니, 봉사자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내어주시던식당 사장님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와 미소를 함께 나누던 현지 축제 관계자분들과 많은 일본, 대만 봉사자 분들, 일본어를 전혀 못하는 나였지만 마음으로 소통하고 교감했던 오타루에서 만난모든 인연 그리고 이 소중한 추억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만든 사랑하는 오코보 19기 YB, OB.
참 다행이다. 이 귀한 사람들을 만난 것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이 곳에 오게된 것, 이 모든 것이 말이다. 너무도 소중한 기억이 많아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촛불이 아른거리는 오타루의 눈 속에서 보낸 추억으로 인해 앞으로 내게 있어서 ‘눈’은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고 따뜻한 단어로 기억될 것이라는 사실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