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4-08 21:21
[6기] OKOVO 활동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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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12김수진
조회 :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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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기 김윤희 문득 OT날이 생각납니다. 낯설고, 어색했던 그 시간. 그 때는 우리가 지금처럼 가족 같고,
이렇게 많은 것을 함께 공유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는데... 2008년 2월은 정말 따뜻했습니다. 오타루 그곳은 너무나도
추운 곳이었는데 어느 OB분의 말처럼 너무 좋은 기억만 남아서 추었던 기억이 없습니다. 발에 감각이 없고, 손이 꽁꽁 얼 정도로 추웠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오타루 생각을 하면 그렇게 추위에 떨던 시간들의 기억은 없습니다. 눈과 양초 때문에 따뜻했고, 그보다 더 오코보 식구들과
함께라서 따뜻했고, 우리와 늘 함께 해주시던 일본인 자원봉사자들 때문에 따뜻했습니다. 고작 보름동안 오타루에서 생활한 건데 한국에
돌아와서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노란 스키복을 입어야할 것만 같고, 양말을 한 겹 신으면 이상하고 네다섯겹은 신어야만 할 것 같고,
신발은 장화만한 신발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제 모습이 좀 우습기도 합니다. 눈 내리는 걸 보며 스노우캔들을 만들어야 할 것만
같고, 이정도 눈으로 뭘 하겠어! 라는 생각이 들고, 길 한 켠에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조그만 눈사람을 보며 옆에 초를 놓아줘야할 것만 같은
생각을 하며 혼자 피식하고 웃기도 합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추억들을 머리와 가슴속에 잔뜩 담아왔습니다. 사진을 보고 또 보며 그 때의
일을 생각하고, 추억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을 갖을 기회를 줘서 감사하고, 이 아름다운 추억을 오코보 식구들과 함께
공유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매년 2월이 되면, 눈이 내리면 오타루에서의 추억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늘 제 가슴 한
켠에 오타루의 추억이 자리 잡고 있을 것입니다.
◎ 6기 안해성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글을 써서
내는건 맨 처음 지원서 썼을 때 이어 두 번 째인데요, 아직도 제 글 실력이 나아지질 않았기에 부끄러워요;;; 지금 생각해도 지원서만 보고 뽑은
거였을 텐데 어떻게 제가 뽑힌건지... 정말 운이 좋았던 듯 ^0^ㅋ 저도 제가 지금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멋지게 좍~ 글로 풀어내고 싶지만 그게 무쟈게 어렵네요 ㅠㅅㅠ 아득하고 아련하고 따뜻해지는 반면에 너무나도 그리웁고 아쉽고 가슴 시리도록
다시 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오타루 중독증에 걸린게 확실한 듯 해요. 귀국한 지 일주일이 넘어가는데도 잠만 잤다 하면 항상 일본에 가있답니다^^
정말 그 꿈에서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정말 좋았던 그 시간들... 처음에 오타루 가서 작업할 때는 불만이 있기도 했었어요. 작업 시간이
2시부터라 솔직히 아침 시간에는 인나서 씻고 밥 먹고 본부 갈 준비만 해도 무쟈게 바쁘고 그랬었거든요.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일을 해서 그런지 더욱 기억에 남고 그런거 같아요~ 그리고 솔직하게 말해서 저의 경우에는 일의 작업량이나 강도가 그리 힘들진
않았어요. 신체 말짱한 23살의 청년인데다가 일본 간다고 그 전에 빡시게 일을 해서 그런지 그다지 힘이 들지 않았답니다. 그래서인지 작업하는
동안 그렇게 쉴 새 없이 제 입에서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오고 즐겁게 조원들과 일을 했었던 거 같아요ㅋ 그래도 이런 저를 받아주는 우리 가족들이
있었기에 정말 좋았답니다~ 아, 그리고 올해에 우리가 운하 B 회장을 통째로 부여받아서 예년과 쫌 달랐단 얘길 들었어요. 그 중 큰 차이가
이번에는 대규모의 사람들이 왔었다는 거죠. 그래서 각 조당 10명 씩 5개조가 만들어져 생활 했는데요 처음 며칠간은 각 조간의 조인트가 없어서
약간 어색했었답니다. 이 부분은 많이 아쉬웠어요. 비록 설상 작업한다고 피곤했겠지만 처음에 각 조원들끼리 친분을 쌓았었더라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도 다들 멋지고 매력 있고 좋은 사람들뿐이라서 저는 매우 즐겁고 행복했답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기회가 저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했습니다^^ 특히 우리 2조 가족들과는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같이 생활하며
살았기에 더욱 많은 정도 들고 정말 좋았습니다. 너무나 화목하고 도란도란한 분위기에 다들 쾌활하게 웃고 오타루 생활을 즐겨서 매우
만족합니다. 참, 아쉬웠던 점은 마지막에 주어졌던 자유 사진 촬영 시간이었어요. 물론 운영진에서 신경써주신 점은 고맙지만 그래도 우리의
추억들을 담아가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던 듯 해요... 아 글고 제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일본에서 일본 친구들을 사귀지 못했다는 거요~ㅠㅠ
그래도 뭐 대신에 우리 멋진 오코보 가족들을 알게 된 시간이 더 있어서 좋았지만요~ㅎㅎ 참참참~ 아쉬운게 또 있었네용~ 제가 진짜 일어를
모르니까 진짜 많이 답답한 면도 있었답니다. 앗~ 아~ 이래서 일본 친구를 못 사귀었나?? 그건 아닌거 같은데;;; ㅋ 음... 또 하고
싶은 말이... 왜 제 사진기로는 그렇게 아름다운 장면들을 담지 못하는 거죠ㅠ대신에 제 눈에 가슴에 고이 담아두려 애썼답니다~ 정말 아름다운
겨울이었어요!!! 아, 눈이 새하얗게 잔뜩 흩날리는 가운데 산 속에 고요히 자리잡은 온천에서 노천욕을 하는 것도 정말 좋았어요!!! 사진을
찍고 싶은 맘이 간절했지만 찍을 순 없었죠 ㅋ 2주가 넘도록 10명의 사람들이 같이 생활하면 분명 틀어지는 일이 생길지도 몰라요. 지치고
힘들고 아쉬울 때도 있고요. 하지만 그 때마다 모두가 가족처럼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고 도우면 그런 문제들은 다 사라져요~ 우리 조의 예를 들면
비데의 강도를 너무 세게 해두지는 말자 등등 ㅎ 와~ 정말 후기를 쓰는게 좋군요~ 저는 워낙 게을러서 활동하는 동안 무슨 기록 같은 거는
원체 하질 않았어요. 그래서 막 잘 까먹고 그랬었는데 그래도 후기 쓴다고 다시 그 때를 떠올리니 막 그 때 기억들이 새록새록 아름답게 다시
되살아나요!!! 제가 또 느낀 건 조금이나마 일기를 써두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참, 나중에 우리 조 회의록을 볼 수 있을까요? 거기에 일기
대신 기록을 해뒀거든요;;;;; 우리 조가 식사에 대해서는 대단히 만족이 컸어요. 그건 우리 희범이 형의 공이 매우 커요~ 식사비 대
효율이 뛰어났어요~~ 재료만 주어지믄 맛난 요리들이 뚝딱!!! 아 글고 이건 저번 대천 엠티 때부터 생각했던 건데요 오코보 활동 비용을
처음부터 자세히 알려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맨 처음에 생각했던 거보다 예상 외로 비용이 많이 든다는 생각을 많이들 가졌거든요. 역시
지금도 제대로 여러 일들을 잘 정리해 둘걸 하는 생각이 간절히 드네요;;; 지금 생각하려니 잘 생각 안나요~ㅠㅠ 그래도 무엇보다도 제일
좋았던 점은 아름다운 곳에서 제게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을 알게 해주고 만나게 해줬다는 거예요~!!! 저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들을 안겨준 많은
사람들...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이번 오타루에서의 일들은 제 평생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오코보 6기로서 활동한 저에게 항상 힘을
불어 넣어주는 최고의 선물이 될꺼예요! 항상 생각하는 건데 전 역시 매우 복 받은 녀석이라니깐요~ㅋㅎ 우리의 이 인연이 계속 쭈욱~
지속되길 바랍니다. 모두들 항상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바랍니닷!!! 뭔가가 많이 빠지고 부족하고 모자람이 넘쳐나는 제 글이지만 우리의
이런 좋은 경험들을 공유해나갈 7기분들에게 쪼꼼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요^^ 참,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우리 성탁
아부지께서 우리에게 한 말이었는데 제게 퐉 꽂힌 말입니다. 짧은 인생 하고 싶은거 다 하고 살아라~ ㅎ 맞아요~, 우리의 소중한 시간들 진짜
하고 싶은 것들 열정을 가지고 즐기면서 산다면 정말 멋지고 행복한 삶이 될거 같아요~ 절로 신이 난다니깐요^^ 유후훗~ I Like
You~!!! Yeah~, Do You Like Me??
◎ 6기 신선미 2008년 2월 4일, 드디어 기다리고 고대하던,
오타루에 도착했다. 숙소 윈켈에서 우리가 15일을 함께 생활한다는 사실이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다음날, 오타루 유키아카리노미치 설상 제작을
위해 우리가 맡을 운하B회장을 처음 보았을 때, 220m라는 사실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이렇게 엄청난 길이를 맡는다는 것에
놀랐고, 한편으론 이 회장을 어떻게 다 꾸밀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처음 우리 조 설상인 보료를 만들기 위해 오빠들이 삽으로 눈덩이를
파낼 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삽을 들고 눈을 치우게 됐을 때, 이 일이 정말 힘들다는 것을 알고 오빠들에게 감사했다. 여차저차해서 운하B회장이
우리 OKOVO의 설상들로 채워졌고, 처음 불을 붙이고 그것을 보았을 때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물밀듯 밀려왔다. 우리가 이 설상을
만들었다는 것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오타루에서 제일 큰 추억이 된 것은 사람들과의 만남인 듯. OKOVO 단원들, 중국팀, 일본
자원봉사자들과의 만남과 사귐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며, 내가 오타루에서 얻은 최고의 보물이다. 귀국하고 사람들과 헤어진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안본 지 일년이 된 것 같은, 친해졌든 친해지지 못했든 상관없이 누구나 다 정말로 보고 싶은 이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고, OKOVO의 단원이 되지못했다면 느끼지 못할 그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멋진 보물을 선사해준 오타루, OKOVO,
일본인들, 중국팀, 그 외에 우리들의 설상을 보고 감탄하면서 관심있게 지켜봐준 관광객들, 오타루시민들 모두 감사해요.
◎ 6기
최유진 작년 7월, 오타루 눈빛거리 축제 자원봉사단을 모집한다는 인터넷 게시물을 발견했을 때, 아니 6기 단원으로 합격하고 9월 OT에
참석했을 때 까지만 해도 현재 내가 이렇게까지 오타루와 오코보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리워하게 될 것인지를 상상하지 못했다. 오늘이 한국으로
돌아온 지 정확히 6일째 되는 날이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단 하루라도 그 곳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오타루는 내
가슴 깊은 추억 속에 남겨져 있는 듯하다. 작년 9월, 오리엔테이션을 하면서 처음으로 오코보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때 OB들은
지금의 우리들처럼 자신들이 간직하고 있는 오타루의 추억을 마음껏 얘기해주었다. 오타루에서의 영상을 보고, 오코보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빨리
2월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에 사는 나는 대부분 수도권에 살고 있는 오코보 단원들과 홈페이지를 통한 교류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걱정을 했다. ‘과연 내가 오타루에서 단원들과 거리낌없이 잘 생활 할 수 있을까?’ 지방에 사는 이유로 서울에서 열리는 작은 행사에
자주 참석하지 못한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1월 엠티.... 힘들게 대천에 도착했을 때 오느라 고생했다며 반겨주던 단원들과 우리 조원들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 고맙게 느껴진다. 2월3일, 도쿄 경유팀인 나는 김포공항에 도착해 들뜬 마음으로 단원들과 인사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다음 날,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타루에 도착했다. 말로만 듣던 윈켈을 눈앞에서 보니 더욱 더 이 곳에서의 생활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우리 2조가 묵게 될 1102호. 다른 조에 비해 집이 그리 크진 않았지만 그것 때문인지 우리 조는 더욱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작업하고, 쉴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우리 조가 살던 윈켈의 구조는 2층과 3층이 너무 개방되어 있어, 여자들이 3층에서 지내기로 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그런 구분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자고 일어나니 성탁오빠가 누워있질않나..다음날엔 재식이가 누워있고.... 2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맥주를 마시면서 하루 피로를 풀었던 우리 조~! 재식이의 모닝콜 소리도 잊을 수 없다. 모두를 공포에 빠지게 만든 그 모닝콜!
노홍철을 저주하게 만든 그 모닝콜 소리!ㅋㅋㅋ 근데 한국에 도착해보니 노홍철이 피습됐다길래 너무 황당하고 웃겼다. 2월 5일, 우리는
본격적으로 운하 b회장에서 설상제작작업에 들어갔다. 올해 오타루에 생각보다 눈이 적게와서 작업이 굉장히 힘들었다. 이틀 동안은 남자들의 삽질이
빛을 발했다. 축제가 시작하는 7일, 우리 설상은 완성 되었고, 남은 시간엔 보조설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보조설상이 우리의 메인설상이 될
줄이야....ㅎ 축제기간동안 날씨는 점점 추워졌고, 눈이 내리는 건지 뿌리는 건지 모를 정도의 많은 양의 눈이 내렸다. 발을 점점 얼어오고,
운하플라자에서 핫팩을 몇 번이나 붙여가며,,, 양말을 몇 겹이나 바꿔 신어가며 작업했던 기억들도 지금은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식권으로 우뽀뽀라멘, 비꾸리돈키, 징기즈칸, 생선구이 등을 사 먹으며 1시간동안의 휴식을 가졌던 것도 너무나 행복한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 봉사단원 뿐만아니라 지금 모두가 친구가 되어버린 일본자봉단, 본부의 인기남 미노야상, 케이할아버지. 야마구치할아버지 모두가 그립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한 중국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짱루이도 지금 나처럼 그곳과 그곳의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있겠지? 10일간 열린
유키아카리노미찌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아름다운 축제였다. 삿포로의 성대한 축제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사람들의 소박함과
인정, 따뜻함이 어우러진 축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로지 눈과 촛불만을 이용해서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가슴속에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줬다는 것, 그것이 오타루 눈빛거리축제의 매력이 아닐까싶다. 평소에 체력이 그리 좋지 못한 나도
그 추위 속에서 한 번도 아프지 않고 웃으면서 지낼 수 있었던 것도 모두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눈치 없는
일본친구들 때문에 우리의 소중한 조인트 시간을 망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 우리와 좀 더 가깝게 지내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일본에 자원봉사활동 간 다고 했을 때, 내 주위에서 그렇게 많은 돈 들여서 왜 가냐고 반문했지만, 지금은 그 돈으로도 다 사지 못할
추억을 안고 왔기 때문에 너무나도 행복하다. 또 한 번도 해외로 나가본 적 없던 나에게 모든 일들을 첫 경험으로 만들어준 오코보단원들에게도
너무나 고맙다. 아직도 눈을 뜨면 스키복으로 갈아입고 버스 타러 부랴부랴 뛰어가야 할 것처럼 내 머리와 가슴이 오타루로 가득 차 있다. 또 축제
마지막 날, 사람들과 헤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눈물, 기억, 행복.... 모든 것을 가슴속에 묻고 살아가고 싶다. 내년을 기약하며
후기를 마친다.
◎ 6기 전선율 오타루를 떠나 온지 며칠이 훌쩍 지나갔지만, 지금 내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질 않는다.
아직도 마음은 윈켈에 있는 것만 같은데... 아니 아직도 윈켈 인 것만 같은데... 다시 눈을 감고,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왠지 윈켈
3층 다락방 맨 구석 내 자리에 내가 누워 있을 것만 같다. 우리 조 공식지정 모닝콜 ‘고추참치’를 들으면서 눈을 뜨면 성탁오빠가
“일어납시다~”라고 외칠 것만 같고, 일어나자마자 씻는 순서를 기다리며 또 졸고 있을 것만 같고, 준비를 다하고 1층에 내려가면 주방에서
희범오빠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열심히 요리를 하고 있을 것만 같고, 터질 듯 한 우리 집 식탁이 나를 반길 것만 같다. 우리 조 다 옹기종기
식탁에 모여서 “이타다키마스~”를 외치고 미친 듯이 반찬 경쟁을 하며 아침을 먹을 것만 같고, 우리들만의 티타임을 가지면서 홍삼 다섯 알,
비타민C, 비타민E 등 이것저것 약을 다 챙겨먹어야 할 것만 같고, 스포츠양말에 수면양말에 오리털 실내화를 신고 낑낑대며 장화에 발을 쑤셔 넣고
버스를 타러 가야 할 것만 같다. 본부에 도착해서 본부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오늘 맡은 회장에 작업을 하러 가야 할 것만 같고, 하룻밤 사이
쌓인 눈을 보고 한숨을 쉬겠지만 이내 말끔히 잊고 우리의 노동요를 신나게 부르며 열심히 작업해야 할 것 같고, 나는 저쪽 구석에서 스노우캔들
백만 개를 만들고 있을 것만 같다. 4시 반이 되면 양동이 한가득 초를 넣고 한 손에는 토치를 들고 설상에 불을 밝히러 가야 할 것만 같고,
6시가 되면 식권을 들고 랄랄라 저녁을 먹으러 우뽀뽀라면으로 고고싱해야 할 것 같고, 우뽀뽀라면을 먹고 골목으로 조금 더 들어가서 치즈 고로케를
후식으로 사 먹어야 할 것만 같다. 내 자리를 정하고 그 자리에서 관광객들에게 “샤싱 토떼 아게마쇼~까?”를 백만 번 외치며 셔텨를 눌러대야만
할 것 같고, 꺼진 초들을 찾아 회장 이쪽 저쪽을 뛰어다녀야 할 것 같고, 8시 55분이 되면 양동이에 집게를 들어야 할 것 같고, 9시
정각에는 회장의 모든 초들을 수거해야 할 것만 같고, 열심히 일한 티를 내려고 옷에는 촛농들을 마구 떨어트려야만 할 것 같다. 일하고 본부에
돌아오면 나영언니랑 두영오빠가 어깨를 두드려주며 수고했다고 격려해줄 것만 같고, 미노야 상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오츠카레사마데시타”라고 외쳐줄
것 같고, 케이할아버지는 따뜻한 차를 챙겨주시고 우리 스키복 주머니 가득 사탕을 넣어주실 것만 같고, 윈켈가는 버스에 타면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는 일본자원봉사자들이 있을 것만 같고, 버스에서는 쏟아지는 잠을 이길 수 없어 미친 듯이 자야만 할 것 같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우리 조 사람들은 샤워순서를 정하기 위해 살 떨리고 숨 막히는 스릴만점 가위바위보를 해야 할 것만 같다. 샤워순서를 기다리며 지쳐
잠에 들 것만 같고, 화기애애한 우리 조 회의가 시작될 것 같고, 회의가 끝나면 희범오빠는 주방에서 맛있는 야식을 만들고 있을 것만 같고,
오늘은 타케가 올까 조마조마 할 것만 같고, 우리의 잔에 술을 채우고 ‘짠~’을 해야 할 것만 같다. 제발 내가 자고 일어나면 퀘퀘한 냄새가
나고 성탁오빠 자취방보다 더럽긴 하지만, 그 어디보다 따뜻한 우리의 보금자리 윈켈이기를... 그리고 우리 조 사람들 모두 함께, 우리 집 윈켈에
그대로 있기를 바래본다.
◎ 6기 김기현 아기벌레: 아빠, 아직 다 안 왔어요? 배고파요... 아빠벌레: 아들아,
인내심을 가져야지. 가장 좋은 차 잎은 제일 꼭대기에 있단다. 아기벌레: 더 못 참겠어요. 이 이파리 먹을래요.
아빠벌레: 딱! (아기벌레를 한대 때리고.) 그건 맛없어! 우리에게는 목표가 있잖니. 자 어서 가자.
가장 좋은 잎을 위해 꼭대기로! 가장 좋은 잎을 위해 꼭대기로!
일본 모 CF의 한
장면처럼 지난 5개월은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것 같습니다. 한 번 떨어지고 추가로 합격자 통보를 받았을 때, 기쁨이 한 순간에 밀물처럼
다가오기보다 "정말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라며 안도의 한숨을 쉴 정도로 너무나 기대에 찬 5개월이었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제가 긴
한숨을 쉬고 있는 이 순간에 누군가는 긴 슬픔에 잠겨 있을 것이라는... 그리고 워낙 많은 경쟁자들 가운데서 선발되기에 뽑히는 자와 탈락한 자의
차이는 습자지 한 장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저는 그 사람들의 빚을 짊어지고 갈 것이기에 오타루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나는 이 글을 누구를 위해서 써야 할까? 하지만 무엇보다
제가 쓰는 이 글을 공감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오코보 가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오코보 가족은 3가지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열정의 Red, 차분함의 Blue, 책임감의 Green!!! 이 3가지의
색은 모든 색의 기본이 되는 색이자 모든 색을 만들 수 있는 색입니다. 하나, 둘, 셋 이렇게 숫자를 세는 이 순간에도 빛은 무수히 변합니다.
우리는 이런 다채로운 빛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빛의 화가입니다. 우리 오코보는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수 있는 가족인 것 같습니다.
모두들 수고 하셨고요... 내년에 갈 7기분들...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가슴속 깊은 곳에 행복과 추억을 가득 담아오세요...
사랑합니다...
◎ 6기 조하얀 설레는 마음으로 지원서를 작성했던 것이 정말 엊그제 같은데 6기 단원으로 선발되고, 축제를
준비하고 오타루까지 갔다 와서 이렇게 후기를 쓰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게 무서우리만큼 빠르네요. 긴긴밤 깊은 꿈을 꾸다가 눈을 뜨니
어느 새인가 아침이 되어있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또 지극히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모든 게 꿈만
같습니다. 귀국 후 며칠 동안은 아쉽지도 슬프지도 그립지도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친구. 가족들과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정리해서 올리고, 오랜 여행의 후유증인 듯 갑작스레 아파오는 몸을 추스르다보니 현실을 깨달을 새도 없이 며칠이 흘러가
버리더라구요. 그리고 이제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갑작스레 밀려오는 그리움. 조금씩... 조금씩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갑작스레
해일이 몰아치듯이 모든 것들이 다시 생각나버렸습니다.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가 갑자기 기억이 되돌아 와서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기분. 그게
지금의 제 심정입니다. 어떤 것이 꿈이고 어떤 것이 현실인지 분간을 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꿈은 아니었죠.
그만큼 그곳이 좋았습니다. 추위에 손이 얼고 발끝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아도, 매일같이 이어지는 작업 강행군에 온몸이 녹초가 되어도,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보고 싶어 질 때에도...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힘이 불끈 솟아오르기에 충분했습니다. 여기가
어디든,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든,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저를 지탱해주었습니다. 제가 처음 OKOVO에 지원했을 때 썼던 말이 생각이
나네요. “OKOVO의 영상을 접하고, 저는 정말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것인지,
보고만 있어도 절실히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영상에서 제가 보았던 모습, 그 따뜻함. 즐거움. 온몸으로 가득히 느끼고 돌아
왔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느끼고 경험한 모든 걸 풀어내려면 아무리 써도 끝이 없을 것 같아 감상은 이정도로만 하겠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작은 바람이 하나만 덧붙일게요. “대화가 통하면 마음도 더 잘 통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이것도 역시 제가 지원서에 썼던 말
중 하나인데요, 저는 OKOVO 모집 영상을 보고 무작정 일본어 회화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한 번도 제대로 일본어를 공부 해 본 적이 없어서
가기 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요. 그러다 운 좋게 일본어 특기자라는 작은 감투를 하나 쓰게 되어서. 작업조 대표로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았는데요. 업무 이외의 사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눌 수 있어서 더 많이 친해지고, 보고 듣고 배운 것도 많고, 일본어 실력도
늘었답니다. 하지만 평소에 일본어를 공부 해 본 적이 없는 친구들은 이야기 하고 싶어도 대화가 안 통하니 정말 많이 답답해했어요.
앞으로 OKOVO의 새 식구가 될 여러분. 가기 전에 꼭 일본어 공부하고 가세요. 분명히 가서 느끼고 돌아오는 게 더 많을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우리 2조 식구들에게 한마디!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어요. 정말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 같이 한 시간, 많은
추억들 절대 잊지 못할거예요. 사랑해요!!!!!
◎ 6기 황재식 첫 느낌이 너무 좋았던 히카리에게. 운하A회장에서 귀여운
'히카리' 한국어 공부하시는 '미야하시 키요미'(어머니)와 함께 손잡고 왔을 때 한 에 토치를 들고 작업하던 나에게는 커다란 행운이었어. 그 전
다른 일본인 자원 봉사자 분과는 내가 도저히 일본어가 안되니, 일본이라는 나라는 22살 오빠에게는 관심 밖 이었지만 다녀오신OB형 누나들이
일본어 못하면 조금 서럽다는 말을 들어 제대하고 2개월을 배웠다 해도 두마디 하면 말이 끊기고 같이 온 일어특기자들에게 관심히 쏠리니 축제가 중
후반으로 지날 때 오빠는 완전 의기소침해졌단다. 하지만 '미야하시 키요미' 너의 어머니와 짧게 짧게 이야기하면서 서로 모르겠으면 조그만
메모지에 한글과 히라가나를 적으면서 서로 웃고 , 그러면서 내가 너 눈치보고 막 장난치고 , 작업하면서 오빠에게는 운하A에서의 시간이 가장
행복했던거 같애 . 둘째 날까지 같이 이야기하고 웃고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혹시나 친해질 사람 생기면 줄려고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했건만
다음날 오지 않아 약간 실망을 했었지. 결국 얘기들으니 '미야하시 키요미' 너의 어머니는 한글을 배우러 귀여운'히카리'는 피아노를 배우러
어머니와 너 없을 때는 참 허전했었어. 운하 B회장으로 가면 몰래 화장실 간다하고 운하A회장 가봐야지 했는데 . 어머니랑 너가 운하 B회장에
먼저 와서 나 찾는거 보고 난 무척 좋아했어 겉으로 표현도 약간 했지만 자꾸 일본 말로 모르는 말과 나는 더 답답해서 하는 한국말 그
사이의 소통이 힘들었지만 몸짓 손짓으로 하는 노력이 있기에 오빠에게는 더 기억이 오래남고 이것이 추억으로 가나봐 . 잠깐 어디갔다온다하고
헤어지기 전에 나에게 줄 선물사러 빠른 걸음으로 갔다오고 나는 이런거 받을려고 먼저 선물 준게 아닌데 , 한국에 와서도 메일이 와서 오빠는 너무
너무 기뻤어. '미야하시 키요미'는 한국어를 배우고 있으니 내 답장을 읽으시면서 '히카리' 너에게 설명해줄텐데 , 나는 마냥 일본어 잘하는
친구들한테 물어보고 ㅜ 2008년 2월 오타루에서의 생활이 그립고 고마워서 한번 더 참여하게 된다면 일본어는 꼭 공부하고 갈께. 운하
A회장 관광객 많은 곳에서 찌르고 도망가고 했던 술래잡기는 잊을 수 없어. 그리고 운하 A회장에서 작업도중 일본인 사진사 아저씨가 찍어준
사진 기억해? 오빠는 환송식 할때 앨범에 들어있는 3명에서 찍은 인화된 사진 2장 받고 정말 뭉클했어 . 10살 이라는 나이 차가
약간 아쉽지만 순수한 마음 잊지 않고 자라다오 . 본부 앞 윈켈로 돌아가는 버스에서의 마지막 인사가 끝이 아니기를
............ 2008년 2월 27일 cool guy라 불렸던 허스키모자 재식 오빠가 .
◎ 6기
윤인애 2008년, 여전히 눈부시도록 하얀 모습으로 오타루는 우리를 반겨주었다. 흰 눈, 파란하늘, 우리 집 윈켈과 함께...
너무도 보고 싶었고, 가고 싶었던 오타루에 도착했을 때, 콩딱콩딱 뛰던 내 가슴이 찡하도록 시려왔다. 그리고
"久しぶり、インエ。"라며 환하게 반겨주셨을 땐, 다시 오길 정말 잘했다고 마음속으로 수십 번을 외쳤다. 그렇게 작년의 추억과 새로운 설렘으로
시작한 오타루에서의 16일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또다시 나에게 잊지 못할 한 아름의 추억들과 그리움, 아쉬움을 안겨주었다. 정말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 가득가득 쌓인 눈들도, 구멍난 스키복도, 발 냄새나던 장갑도, 북쩍북쩍 903호 우리집도, 그 안에 우리들 웃음소리와
우리들의 시간들이 너무나도 그립다. 아침에 눈뜨기가 무섭게 웃기 시작해서 잠들기 전까지 배가 아플 정도로 웃던 그 시간들이 이제는 너무도
가슴 시린 추억으로 마음속에 들어와 있다는 게 슬프고, 16일 동안 내내 붙어 다니던 3조라는 가족들과 떨어져있다는 어색함이 이제는 한국에
와있다는 걸 실감나게 해준다. 아침에 일어났다가 씻는 순서를 기다리면서 쪼끔쪼끔씩 다시 자다가 일어나 씻고, 부랴부랴 아침을 먹고,
겹겹이 옷과 양말을 껴입고는 버스를 타고, 본부에 출근 도장을 찍고,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추위와 피곤함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일을 하고,
점심, 저녁을 먹고, 본부에 퇴근 도장을 찍고, 버스를 타서 빠이빠이하고, 집에 돌아와 밤새 수다 떨던.. 어떻게 보면 똑같은 일들의 반복이었을
그 생활들이 지금에 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보다 더 특별할 수 없이 특별했던 생활이었음을 느끼고 또 느낀다. 물론 16일 내내 항상
좋았던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작년과 마찬가지로 조금은 힘들었던 그 시간들이 나를 좀 더 자라게 해 줄 거라고 생각하기에 이제는 그
시간들마저 그립다. 좋았던 일도, 슬펐던 일도, 어떻게 보면 같지만 서로 다른 추억들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어서 고맙고 또
행복하다. 그리고 제대로 한 것도 없이 말만 OB였던 나였지만, 따뜻하게 대해주고 진심으로 대해줬던 우리 조, 우리 가족들... 잊지
못할 추억을 한 아름 만들어줘서, 16일 동안 함께 살아줘서, 그리고 가족이라는 선물로 내 곁에 있어서줘 정말
고마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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