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4-08 21:25
[8기] OKOVO 활동 후기
 글쓴이 : 12김수진
조회 : 1,804  




◎ 8기 조성진

“한번은 괜찮은데… 두 번은 안 와!” 라고 말했던 게 생각난다. 오후 2시부터 4시 반까지 끝없는 스노우캔들 만들기… “친구들에게 추천은 못하겠다… 했다가는 욕먹겠어.” 날은 춥고 몸은 피곤해서 천근만근… 게다가 3명 이상 모여서 있는 것도 눈치 보인다.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라고? 난 눈이 이제 쓰레기로 보여.” 이 말에 어찌나 크게 공감을 하게 되던지… 처음 오코보에 지원하고 단원으로 선발이 되었을 때의 기쁨과 오타루에 도착했을 때의 그 설렘… 그 모든 건 다 허상이었던 걸까? 그렇게 힘들었던 20일은 찰나의 바람처럼 지나갔고, 나는 지금 한국에 돌아와 다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철모르는 3월의 눈에 전에 없던 흥분을 느끼고 있다는 것.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맞아… 그땐 그랬지… ‘ 하면서 그 시간들을 잊지 못해 추억에 잠기게 된다. 그 매서웠던 추위와 야속하게 자꾸 촛불을 데려가는 바람, 그리고 끊임없이 내리는 눈 속에서 무심코 바라본 회장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제껏의 고생을 다 씻겨 주는듯한… 조용하지만 큰 울림이 있는 모습이었다.
지금의 나는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며 벅찬 흥분을 내지르고, 주위의 친구들에게 정말 정말 고생스럽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며 꼭 지원하라고 열변을 토하는… 영락없는 오코보인이 되었다. 처음 오코보 단원이 되어 간 OT때가 기억난다. 우리를 보고 자꾸만 부럽다고 하고, 자기도 다시 가고 싶다고 난리법석들이던 OB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 내가 OB가 되고 보니 절실히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내가 아무리 원하고 그리워하여도 그 시간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그리고 다시 오타루에 간다고 하여도 첫 도착의 설렘과 기쁨은 다시 느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코보는 그것이 다가 아니다. 어느 장소… 어느 때… 그리고 어느 사람들…

“당신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 8기 이화주

울산에 눈이 처음 내리는 날. 나는 한국에서의 눈, 아니 울산에 몇 년 만에 내리는 눈을 보며 오타루를 떠올렸다. 오타루를 생각하자면 사실 눈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다른 것을 제쳐두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눈이었다. 눈. 그것은 경상도에 사는 나로서는 몇 년 만에 볼까말까 한 것인데, 매일 쏟아지는 눈들을 맞으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오타루앓이. 그것은 무엇일까. 춘계엠티를 다녀오면서 내내 윗 기수의 오타루병에 대해 수도 없이 들었다. 나도 정말 오타루를 다녀오면 매년 겨울마다 오타루병에 걸리는 것일까?.. 매일 밤 나는 오타루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어떨 때는 비행기에 탑승하는 꿈도 꾸고, 또 어떨 때는 오타루에 가서 눈을 맞는 꿈도 꾸웠다. 정말이지 이런 것이 오타루앓이구나.. 싶어 신기하기도 행복하기도 했다. 정말 내가 오타루를 다녀왔구나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생각나는 것은 많은데 말로 표현하기가 힘이 든다. 내가 무어라 표현한 들 그것이 오타루에 대한 평가가 될까? 그만큼 오타루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오타루에 가서 일을 하면서도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너무나 힘이 들었다. 내가 여기까지 와서 왜 생노동을 해야 하는 지 의심되는 순간도 많았고, 손과 발이 동상 걸릴 것 같이 아파오는 걸 느끼면서도 꾹 참고 설상작업에 임했던 순간도 많았다. 정말 발이 너무 시려워서 눈물이 나오는 것을 꾹 참고 참아도 견뎌 내야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다들 설상을 만들면서 지쳐있었지만 윈켈에 돌아오면 금방 웃음으로 야식을 만드는 조원들이 있어 힘든 것쯤은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윈켈 앞 언덕에서 썰매장을 만들어서 박스로 썰매를 탔던 일이나 미친 듯이 무사시 온천을 갔던 일, 밤마다 야식을 먹으며 아사히 맥주를 마음껏 들이켰던 일, 조원들끼리 이불 속에서 진실게임을 하던 일.. 생각하면 너무나도 많은 재미있었던 일들이 있었지만 힘든 일도 많았다. 일본 음식이 입에 안 맞아 체해서 급하게 현득오빠를 불러다가 침을 맞은 적도 있었고 눈길이 미끄러워 미끄러진 적도 많았다. 일본어나 중국어, 영어를 다 잘하지 못해 일본인들이나 중국인들에게 말을 잘 건내지 못한 아쉬움도 남아있다. 왜 진작 외국어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라는 많은 아쉬움뿐이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쉬운 일이나 힘들었던 일보다 너무나 재미있고 행복했던 적이 많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이것이 오코보의 힘일까? 한국에 와서 집에 도착하니 아빠가 물었다. 한국이 안그리웠냐고. 당연히 그리웠지~ 라고는 말은 했지만 사실 한번도 한국이나 집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만큼 즐거웠고 행복했었다.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특히 스즈키상과 혼도상!) 너무나 행복했다. 이번 겨울에는 설에 가족과 함께 있진 못했지만 너무나 특별한 만남덕분인지 더더욱 행복했다. 왠지 윗 기수 말대로 매년 겨울마다 오타루를 그리워하며 그렇게 살아갈 것 같다. 지금도 나에게는 생생한 유키아카리노미치. 운하B를 허문다는 말에 그렇게 마음이 아플 수가 없었고,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나에게 먹을 거나 손난로를 주면서 추운데 고생한다는 말에 그렇게 힘이 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타루에서의 행복했던 시간들이 흘러 한국으로 가는 날이 되자 너무나 많은 아쉬움만 밀려왔다. 좀 더 놀아둘 껄, 좀 더 오타루를 눈에 새길걸, 좀 더, 좀 더... 비행기 안에서, 그리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서조차 정말 이젠 끝이구나 생각하니 아쉬움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버스에서 조원들이 써준 롤링페이퍼를 봐서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아마 오늘 밤에도 오타루에서 웃고 있는 나를 꿈속에서 발견할 것 같다.


◎ 8기 이영관

오타루앓이(명사)
OKOVO인들에게 높은 확률로 발병하는 상사병의 일종. 2003년 최초 보고된 이후에 한번 걸리면 나을 수 없는 불치병으로 확인되었다. 보고된 증상으로는
1. 눈을 보면 무언가 만들어야 될 것 같다.
2. 비가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부면 왠지 모르게 걱정된다.
3. 조용한 집이 적응이 되지 않는다.
4. 길을 갈 때 일렬로 가야될 것 같다.
5. 홍석천을 보면 누군가 떠오른다.
등이 있고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환자(?)입니다. 350여일을 오타루를 그리워하고 오타루에 다녀왔던 추억으로 1년을 살아갑니다. 많은 이전 기수 분들이 그러셨고 저 또한 그렇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오타루란 곳이 “지상 낙원이다!!!” 라거나 “활동이 끝내주게 재밌어요!!!”라는건 아닙니다. 오타루란 곳은 축제가 아니면 그냥 시골이며 활동은 춥고 힘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타루앓이를 하는 것은 힘든 기억이 나중에 추억이 된다는 일반론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약 2주의 기간 동안 잠자는 시간마저 함께 보낸 OKOVO인들과의 기억, 현지 분들과의 기억. 한동안 잊고 지냈던 사람의 따뜻함이 바로 오타루앓이를 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지금도 오타루앓이를 겪고 있을 OKOVO인들, 그리고 앞으로 겪을 다른 모든 분들. 따뜻함이 있는 오타루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PS: 오타루에서 만난 화가분과의 추억
축제 막바지, 렝가요코초의 덮밥집. 좁은 그곳에 매우 라이더스러운 아저씨 한분이 앉아계셨습니다. 여유롭게 한잔 하시면서 그 독한 블랙스톤을 피우고 계시더군요. 한마디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지만 가끔 저희를 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다음날 같은 장소에서 그분께서는 저희에게 도넛10개를 건네주셨습니다. 수고한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그리고 직접 그리신 작품들을 보여주셨지요. 또 덮밥집 주인 아주머니께선 발렌타인데이라고 초콜릿도 주셨습니다. 크고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그 분들의 마음이 담겨있었습니다. 덕분에 그날 저녁은 따뜻했습니다.
내년에 다시 가서 만날 수 있다면 그때 표현하지 못했던 감사의 마음 모두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PS2; 함께 갔던 단원분들~ 제 패션에 대해선 잊어주길 바래요~ 제발~

◎ 8기 용해주

Name of festival is Otaru snow light path festival. It holds on Otaru, where located northern Japan. It takes place every year in February. During the festival, many volunteers take part in that. Every year, 50-60 Korean go to help this festival. I was chosen as a member of volunteer workers to support Japan’s snow festival last year. It was first time to visit Japan and do the foreign volunteer work. For that reason, I was on the cloud nine when I got message about that. First I heard that the content of this volunteer work is managing festival, I felt an easy mind. However, it was a mistake. Our duty was not only managing festival but also making some of sculptures. Before we went to Japan, we had to make an idea of sculptures. In festival, there are several stages all over the city and each stage has many kinds of sculptures from igloo to railroad. Remarkable thing is all sculptures must be made by snow only. This fact is the biggest difference between Sapporo snow festival and Otaru snow light festival. Of course, it’s hardly necessary to sat but it snows a lot in both cities. Sapporo, however, concentrates on making big statues and monuments made of ice rather than snow. Making sculptures with snow only is characteristic of this festival, and we have to make it. The reason why we must do that is we, Korean volunteers, have a stage of our own. The length of Korean stage is almost 250 meters. It’s located in Otaru canal. The stage winds along canal road.

For us, making thing was a kind of first experience. We just had a memory of making snowman at most but festival was entirely different level. Among us, there was no one who majoring department of fine arts or architect. It was like beating my head against the wall at first. While we were thinking about the contents, we suffered a lot from the obsession that we had to make a thing, which had a strong Korean atmosphere. After much deliberation, we decided to choose several items of contents. First one was the Korean house in old style. Next one was the Korean letters named Hangul. Third thing was the map of Korea and Japan, and so forth. In order to make a creative idea, many senior Korean volunteer workers helped us and talked to us in a by-the-way fashion. Making a sculpture using a snow is not as easy as we think. The condition of weather is really important matter of making it. They said that if weather is warm, snow will melt down easily. Lastly, we will never know the real situation until we visit there. As soon as we arrived, we got a problem. The person in charge said that the amount of snow was not as enough as they expected. Nevertheless, we thought that we could do it.
  
To tell the truth, it was not easy. After all that, but, it was worth doing that efforts. I’m not sure I can treat our work as one of making an art. However, one thing that I assured was not only I but also other volunteers were able to feel harmony with all people who visited festival. At first, Korean volunteers were not familiar with each other, because we just met for this festival only. For that reason, we had no strong sense of solidarity. During the festival, we made many kinds of sculptures. On the while, a strong friendship grew among us. Doing a hard work together will be annoying thing, but it makes us feel good when we work together and play together. Every night, we talked about our things and discussed how it worked well. After homecoming, all of us became a family. I can’t think away the relationship between us and Chinese volunteers too. There were numerous volunteers in festival. One of them was Chinese team. We had no one who speaks Chinese at all, and Chinese team also had no one who speaks Korean. We just communicate with each other by using in English and Japanese. The common subject of both teams was the sculpture of their own. Without language, we could get an attention and interest about another team. Above all, I was able to set new criteria about Japanese because of this festival. Most of Korean has an anti-Japanese sentiment. I’m worried about that if Japanese looked down on me, I did not know what I should do. My fears, however, was utterly groundless. All Japanese are really kind of us and pleasant. They were really welcomed us. People in charge of festival always had a good smile and offered comfortable opportunity to work. Japanese volunteers were also had a nice attitude to us. Even some stages, there were a number of old volunteers. They prepared many kinds of food items for other volunteers so we could eat many times thanks to them.

All experiences of snow path festival were totally amazing. We did many works such as guidance, repairing the monuments, and taking a tourist’s picture. Local broadcasting in the city recorded our acts and local newspapers wrote an article about us. To them, we were a special guests and extra people. Many tourists encouraged us too. Sometimes, we felt really great when Korean travelers visited, and gave us a big hand. We were not doing this to be rewarded. We just organized whole festival and made some kinds of sculptures because it was fun. Even though such works were really hard, I could somehow put up with it. It seems that carving a thing is not an art but just a work. That could be so, but one common subject, carving, made us be harmonious with the whole partners in festival.

ps.
세계로 뻗어나가는 국제적인 봉사단체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어줍잖게 나마 영어로 몇자 적어봅니다.
ps.2
번역본을 원하는 분들은 개인적으로 연락을...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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