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4-20 21:59
[14기] OKOVO 활동 후기1
 글쓴이 : 14김창현
조회 : 16,050  

14기 OKOVO 활동 후기를 정리해서 올립니다. 순서는 보내주신 순서대로 정리한 것입니다.
뒤늦게라도 후기를 보내주실분들은 okovo14@naver.com 으로 보내주시면 추가해서 올리겠습니다.

*분량상 관계로 한 게시판에 글이 전부 올라가지 않아 1,2로 나뉘어서 올립니다.


<1조 이유진>

18박 19일.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 18일간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뜻 깊은 시간들이었다. 선발이 아닌 추가합격으로 합격해 처음에는 긴장되는 설렘이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18일간 생활할 수 있을까 또 일본어 특기자로써 다른 사람들의 귀와 입이 되어 잘할 수 있을까와 같은 걱정, 부담감과 긴장감이 있는 동시에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의 봉사활동,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설렘이 있었다.
가장 좋았던 건 항상 9시에 봉사가 끝나고 윈켈에 돌아와 조원들끼리 맛있는 야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던 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진짜 가족처럼 서로서로 잘 챙겨주고 배려해주고 이해해주는 말과 행동으로 아픈 사람 없이 재미있게 신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솔직히 일이 안 힘들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 때마다 조원들의 격려와 함께 내가 열심히 만든 설상을 관광객들이 예쁘다고 하면서 그 앞에서 사진 찍을 때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힘들었던 것보다 뿌듯함이 밀려왔다.
봉사활동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오니까 길게 느껴졌던 18일이 아쉬움이 남을 만큼 짧게만 느껴졌다. 항상 오전엔 설상을 만들고 4~5시가 되면 촛불을 키고 6시가 되면 가장 예쁠 때인 Blue snow가 되어 내 눈을 즐겁게 해줬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아직도 오타루에서 지내던 날 하나하나 생생히 기억이 난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매년 가고 싶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봉사활동으로 내가 느낀 이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정말 너무 매우 진짜 1조가 돼서 너무 너무 너무 행복했어요. 사랑합니다.


<3조 이태민>

일본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큰 기대를 안고 기다린 내 생애 첫 해외이자 첫 해외봉사활동이자 가장 긴 일정의 여행이었던 오코보... 식상하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최고"였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말하는 최고의 의미와는 확연히 다른 의미의 "최고"를 선물해준 사람, 장소, 시간, 추억, 풍경, 공기, 만남, 웃음, 의미들은 내 인생에서 다시는 그릴 수 없는 한 폭의 그림 하나를 그려주었다 아직도 그 설레는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련하면서 몽글몽글(?)해지는 내 모습과 습관적으로 사진첩에 있는 오코보 기간에 사진들을 훑어보고 나도 모르게 미소를 띄우는 걸 보면 이 후유증이 얼마나 갈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처음으로 눈안에 넣었던 정말 말그대로의 "설경"을 나에게 선물 해줬던 오타루, 또 거기서 나와 우리 오코보를 맞아주신 많은 관계자 분들과 일본 분들의 과분할만한 호의와 또 늘 함께 유키아카리노미치를 위해 매일 회장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다이다이와 에볼의 자원봉사자들과의 교류도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내안의 있는 많은 것을 바꾸어 주었다 봉사활동을 하러 간 것으로 내가 영향을 받을거라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었기에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이 좁은 사고로만 살아왔던 나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온 활동이었다 특히 함께 일본까지 와서 봉사활동을 했던 우리 오코보들과의 만남은 너무 감사한 인연이었다 늘 함께여서 너무 좋았던 우리 조 뿐만이 아니라 그냥 오코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여서 즐겁고 행복했던 18박 19일이라는 시간은 내가 살아오는 동안 다시 되돌아 가고 싶은 최고의 순간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내게는 나 혼자서 무언가를 해본적이 없었다는 사소한 이유로 무심코 지원해서 2015년 8월부터 2016년 2월까지 함께한 오코보, 단순히 그렇게 좋은 시간들이었다가 아닌 내 인생의 정말 소중한 보물을 상자에 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또 다시 느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내년에는 YB가 아닌 OB로 다시 참가해보고 싶다 그때에는 또 어떤 소중한 보물을 담아 올 수 있을지 기대하면서.. 


<3조 김창현>

오타루 정부(시의원들을 비롯한 정부관계자들), 오타루내에 위치한 기업들, 오타루 시내 상가들, 오타루내 학생들, 그리고 오쿠보(한국봉사단)를 비롯한 에볼(중국봉사단), 다이다이(일본봉사단)들까지 참여해서 만들어가는 과정들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오타루시에서 1년중 가장 큰 행사이다보니 모든 시내있는 사람들이 모여 하모니를 이루어 빛내는 모습이 좋게 다가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문화들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화합의 장을 만들어내고 교류하며 소통할 수 있는 이러한 문화를 말이다. 관광수입은 덤으로 따라오고. 
더불어 그 관계 속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인정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오롯히 받아 좋았다. 
지금 내가 헛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정말 별거 아니지만 오타루 시내 사람들이 종종 우리들에게 수고한다고 자그만한 선물들을 보내주거나 호의를 베풀어 주는데 그것들로 인해 우리의 일이 가치가 있다는 걸 느낀다. 그러면서 우리가 하는일에 자부심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일본 문화와 음식, 그리고 오타루의 멋진 풍경들과 훗카이도의 설경은 겨울만 되면 그곳을 매번 그리워 할 것 같다. 19일동안의 아름다운 추억과 더불어서.


<5조 류유진>

벌써한국에돌아온지한달이넘었다는게믿기지않는다. 매번달력을볼때마다며칠지났지? 하고보게되는데, 볼때마다시간이정말빠르게가는것같다.
4년전, 삿포로에가자는친구의말에, 바로부모님께말하고떠났던날이기억난다. 처음으로친구와함께갔던해외여행이었고, 3박 4일이라는짧은기간에오타루도갔었는데, 정말좋은추억이되어다시꼭가리라다짐했었다. 그러다우연히 OKOVO를발견하게되었고, 합격하여 4년만에다시오타루에갔다오게되었다. 정말해보고싶었던활동이었기에항상생각할때마다꿈을꾼것같았다. 정말좋은인연도많이만들수있어좋았고, 우리조원들과같이지내며설상을만들었던기억, 윈켈에서만들었던요리, 그리고하루도빠지지않고밤마다마셨던술, 19일동안했던모든일이정말평생잊을수없는추억이되었고, OKOVO가항상그립다.
어느새주변사람들에게 OKOVO를추천해주고있는데, 앞으로도많은사람이다음기수, 그다음기수때도지원하여좋은추억을같이나눌수있는사람들이더많아졌으면하는바람이다. 나중에는시간을만들어서라도다시한번가고싶다. 오타루를찾아가는날이몇년이지난후일지는모르겠지만, 꼭다시보고싶다. 그리고, 다들정말고맙습니다.보고싶어요!!♥


<5조 김대영>

후기를 처음 써봅니다.. 긴장되네요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키보드는 문제가 없는 것 같은 데 도무지 글이 써지질 않습니다
네이버에 '후기'를 검색 해보았습니다
[명사]

1 .일정 기간을 둘이나 셋으로 나누었을 때의 맨 뒤 기간.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실학사상이 한층 더 고조되었다.
의사인 동렬의 설명에 의하면 이러한 가벼운 증상들은 후기 임부(妊婦)들의 공통적인 증상이라 한다. 출처 : 홍성원, 육이오
2 .뒷날의 기약.
후기를 믿다.
3 .<생물> 유사 분열에서, 중기와 말기 사이의 시기. 반수의 염색체나 상동 염색체가 분리하여 양극으로 이동하는 시기를 가리킨다.
​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연관검색어에 'epilogue'가 있네요. 클릭해보겠습니다
epi·logue​
[명사]
(연극・영화・책의) 끝맺는 말[종결 부분]참고 prologue
 이런 뜻이라네요
 
18박 19일간 참 많은 일이 있었지요
정말 각양각색의 색깔을 가진 사람들과 근거리에서 소통하며 지낸 뜻 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에 따라 근 한 달간 학습이 되어 최소 6개월 이상의 장기기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오코보 활동에서의 거의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떠오르지만 구구절절 쓰지는 않겠습니다
이미 다녀오신 분들은 어차피 아실테고, 같이 다녀온 친구들도 학습이 되어 있을테고, 내년에 갈 친구들은 가보면 알기 때문이죠
멘토링 때 마다 항상 듣던 '가보면 안다' 라는 말에 깊은 공감이 됩니다.
이제서야 글이 안써진 이유를 알 것만 같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네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몇번을 더 본지 모르겠습니다.
만나서 항상 그래왔듯 웃으며 시간을 보내고, 취침시간 잠자리에 들 듯이 터미널로 돌아가죠
그냥 잠을 푹 자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 같네요.
이제는 부단장이라는 단장도 아니고 단원도 아닌 애매한 직책을 맡아 행사 할 때마다, 다른 지역에 놀러 갈 때마다 잠에서 깰 테고..
신토익으로 전환되기 전 거의 마지막 토익인데 이 중요한 시점에 지금 뭘 이렇게 쓰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후기'는 정의에 따라 모든 것이 종결 되었다고 느껴질 때, 그 때 다시 쓰겠습니다.
공부하러 갑니다.


<3조 임아름>

오타루는 정말 환상적인 곳이었다.
낮엔 펑펑 내리는 눈들로 세상이 하얗게 그리고 조용히 가라앉고,
밤이 되면 수많은 촛불들이 살아나 밤거리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장화 속 발이 꽁꽁 얼어서 아플 정도의 추위도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만큼 아름다운 도시였다. 
그러한 도시에서 19일간 현지인처럼 생활 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매력적인 일이었다. 
춥기는 했지만, 눈을 만지는 일이라서 매일 매일이 즐거웠고, 
일을 마친 후 모두 모여앉아 마시던 윈켈에서의 맥주 한잔의 시간은 더더더욱 즐거웠다.
윈켈을 비롯해서 많은 오타루 시민들이 우리를 반겨주었고, 또 많은 체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마치 온 마을 사람들이 눈빛거리축제를 위해 많은 것을 베풀고, 봉사하는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도시 전체의 축제! 그러한 사람들의 열정과 마음에 보답하듯 오타루의 밤은 이뻤고,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해 주셨다. 너무나 보람찬 19일이었다.
축제의 마지막 날은 너무나 추웠고 눈과 함께 비까지 내려서, 말로만 듣던 눈따귀도 많이 맞았다. 그리고 촛불을 켜도 켜도 뒤돌아보면 또 꺼져있어서 나중엔 정말 애써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촛불을 켜 나가야 했을 만큼 날씨 상황이 안 좋아서 많이 힘들었다. 그렇지만 중국의 에볼, 일본의 다이다이 그리고 우리 오코보까지 마지막이니까 힘내자며 서로 격려하며 즐겁게 축제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마지막 촛불을 끄는 그 순간이 다가오자 무척 슬펐지만, 그 후의 송별회가 더 슬퍼서 그 슬픔은 금방 사라졌다. 슬픔은 슬픔으로 잊는다고 공항에서 헤어질 때는 더 슬퍼서 오타루에서의 슬픔은 또 잊혀졌다ㅠㅠ 
아무튼 정말 즐겁고 기억에 남는 19일을 선사해준 오코보, 그리고 오타루에 참 감사하다! 내년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꼭 참여해서 오타루를 밝히고 싶다!!! 


<5조 이승민>

일본으로 가기 전, 설렘 반 의심 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해외에서의 봉사활동과 그 속에서 마주칠 사람들의 모습은 저에게 의욕과 흥분을 불러일으켰고 반면, 생각했던 것보다 아닌가라는 자체의 의심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가지의 감정을 가지고 출발한 저는 분명히 하나는 제외할 수 있었습니다. 숙소생활,봉사활동,단체생활을 한 저는 출발하기 전 가졌던 의심의 모습을 반성하게 된 거였습니다. 봉사활동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으며 운영의 시스템은 확고하였고 숙소생활과 문화생활은 제가 가졌던 이상적인 모습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또한 생각보다 춥고 어려웠던 활동을 하면서 난로하나에 서로 몸을 부대끼며 다독여주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코보 일원으로서의 뿌듯함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일간의 활동. 잊을수 없고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겨졌습니다.


<5조 조인제>

: 12월 25일, 처음으로 만난 우리 5조 단원들. 
재밌었던 카톡회의와 스카이프 회의와는 달리 어색했던 인천공항에서의 만남. 
그리고 너무나 아쉬웠고 그리웠던 18박 후의 치토세 공항에서 일본인들과의 작별. 
처음 설레는 마음으로 작성했던 오코보 지원서, 그리고 멘토링과 ot, mt를 통해 듣게 된 오비들의 추억팔이와 그로 인해 증폭되어만 가던 오코보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은 오히려 반작용으로 나에게 걱정을 안겨 주었다. 언제나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고.. 
하지만 나 또한 지금은 오비들이 했던 추억팔이를 나의 지인들에게 하고 있다. 설상을 만들며 웃고 떠들었던 그 시간들과 밤마다 마시던 맥주, 그리고 설탕으로 녹인 미역국으로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던 유진이 누나와 세운이의 생일 날 까지. 겪지 않고는 모를, 공감하지 못할 애기들을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에 만나는 사람들 마다 붙잡고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그럴수록 밤마다 들었던 음악과 눈을 맞으며 몸을 녹였던 노천탕의 온기, 그리고 자유여행 때 러브레터 ost를 들으며 거닐던 훗카이도 대학의 캠퍼스 까지 모든 것 하나하나가 사무치게 그립고 보고 싶었다. 잠에서 깨면 보이던 창문 밖으로 쌓인 하얀 눈과 일층에서 들리던 아침밥을 분주히 준비하던 소란스런 시간들의 일상적인 나날들은 지금 혼자 자취를 하고 있는 내겐 너무나도 특별한 순간들이 되었다. 하루 이틀 지날수록 며칠이 지났는지 보단 며칠 밖에 남지 않았다는 아쉬움만 커졌고, 그럴수록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함께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첫 만남 때 어색했던 그 시간마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상태 그대로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공항에서부터 얼마나 재밌을까. 걱정 없이 오로지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충만하게 비행기를 탔을 텐데.. ’ 18박 후 돌아온 한국은 아직도 오타루였다. 내 폰의 날씨앱에 설정된 오타루의 날씨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고, 빈 시간에는 언제나 오타루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보냈다. 조금 더 재밌게 놀 걸, 조금 더 오래 운하 회장의 풍경을 눈에 담을 걸, 조금 더 지그시 창밖의 눈을 감상할 걸. 후유증이 커질수록 온통 미련이고 후회뿐이다. 기회와 시간이 된다면 다시 한 번 눈 내리는 오타루에 가야지. 설령 오코보의 단원이 아니라 유키아카리노미치를 구경 온 한명의 관광객이 된다 하여도 여전히 나는 2016년 2월 달의 오코보 추억으로 온전히 오타루를 마주하지 않을까.


<3조 배지연>

처음 일을 하던날 내가 상상했던것과는 달라서 신선했다. 축제의 보조 정도일줄 알았는데, 그 곳은 내 손으로 하나하나 축제를 만들어가는 곳이었다.
그 속에는 일본어특기자로 참가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 또한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뻤다. 우리 오코보들이 마음을 모아서 만들어가는 축제 오타루 유키아카리노미치는  멋진 경험이었고 행복한 추억이되었다.


<3조 채예슬>

홋카이도 오타루 눈빛거리축제 봉사를 다녀온지 한달도 더되었지만 어제일같이 기억이 생생합니다.
한여름밤의 꿈만같던 정말 너무나도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던 3주였습니다.
2015년 2월부터 키워왔던 인연으로 40명의 친구와 10명의가족을 얻었고 오타루에 가서는 더 많은 일본인과 중국인, 또 다른 여러나라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외국친구들과의 대화는 어려웠지만 노력해서 여러얘기를 하는게 즐거웠고 정말 춥고 힘들고 피곤해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봉사했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최대한 천천히 가기를 바랐습니다. 
봉사기간동안 고민했던 저녁식사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갔던 클라스호텔 노천온천도, 저녁마다 했던 조별회의도, 가끔씩 윈켈에 놀러오셨던 다른조원들과 일본인친구들과의 소소한파티도 잊지못할것같네요!
14기에 막내로참여했는데 너무편해지고 좋아져서 가끔은 생각없는행동과 과도한애정표현도 있었는데 다이해해주고 다들너무잘챙겨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잘부탁해용


<3조 김병완>

여행을 갈 때는 꼭 책을 한 권 이상씩 챙긴다. 가져간 그 책을 닳도록 읽고 또 읽어서 외워버릴 정도가 되면 어느새 여행이 끝나있다. 그래서 내게는 어느 여행을 떠올리면 그 여행에서 읽었던 책들이 함께 떠오르게 된다. 4년 전 네팔에서 읽었던 '세계의 끝 여자친구', 작년 동남아와 유럽에서 읽었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허니와 클로버'같은 책들. 
봤던 영화를 또 보곤 한다. 작업을 하면서, 청소를 하면서 봤던 영화를 더블모니터의 오른켠에 켜 놓는다. 정말 좋은 영화는 시간을 들여 정기적으로 다시 보기도 한다. 유쾌하고 재밌어서 친구들과 술마시며 한 번 더보는 영화들도 꽤 있다. 좋은 영화는 또 봐도 좋다. 
'한 번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은 두 번 읽을 가치 또한 있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던데, 나는 책도 영화도 읽고 또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남들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워낙 한 번 보거나 읽은 것은 까먹는 것이 특기인지라, 정말 좋은 것들은 두 번 세 번 봐도 처음처럼, 혹은 처음보다 더 재밌고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이건 참 복이다.
이번에 오코보에 가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 첫 번째, '왜 또 왔어요?', 그리고 두 번째, '내년에 또 갈거에요(갈거죠)?'. 
사람들을 만나는 게 즐거워서 매년 눈 냄새가 나는 계절이면 오타루를 찾은 지 삼 년 째, 이번에도 역시 즐거웠다. 매년 가까워지는 일본 친구들, 익숙해지는 장소와 풍경과 작업들, 그리고 항상 새로운 동료들, 아마 그것들이 내년에도 그리워지겠지. 벌써부터 그리운걸. 그런데 두 번째 질문에는 항상 머뭇거렸다. 또 갈 수 있을까? 
민재형이 작년에 '더 이상 오코보를 가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라는 말을 했었는데, 그 말을 들었을 때 참 쓸쓸해졌었다. 나도 지금은 똑같은 질문과 고민을 한다. 더 이상 그곳에 갈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오겠지. 
그래서 두 번째 질문에는 항상 같은 대답을 했었다. '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아마도?' 라고. 그러면 내게 물었던 그 친구는 무슨 의미인지 모를 웃음을 함박 짓곤 했다. 그런 웃음들과 마주하면 결국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읽었던 책을 또 읽고, 봤던 영화를 또 보는 것이 좋다. 매번 새롭고 매번 느끼는 게 다르니까. 오코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웃음들과 같이 할 수 있다면 여전히, 또 함께


<3조 서준교>

18박 19일간 좋은 사람들,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봉사를 목적으로 간 거였지만 얻고 온 게 너무 많은 거 같습니다. 영상특기자여서 아직 저의 오코보는 끝나지 않았지만 멋진 추억을 만들게 된 기회가 주어져서 감사합니다.


<1조 권현우>

공항에서 집에 조심히 들어가라고 단원들과 인사를 하고 온몸이 물에 젖은 것 마냥 무겁기 그지없는 상태로 부산을 내려갔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20여 일 동안 타지인 일본에서 생활하며 보고 느낀 것을 여과없이 재미를 더해서 써내려가려 생각했지만 그러기엔 날밤새고도 모자라다고 생각하기에 내일 일정을 생각하여 그런 욕구는 꾹 참아본다. 요약 정리하여 쓰려고 마음먹었으나, 그게 잘 될지 모르겠다.
바야흐로 지금으로부터 2개월 전......1월 31일.
머리에 터래기가 나고 처음으로 인천공항에 발을 들여놓았다. 촌놈 티내지 않으려 당당하려 했던 모습을 생각하니 침대에서 저절로 이불을 발로 찼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구경하려 했지만 출발 당일부터 피곤에 쩔어 있었기에 심신에 휴식을 주고 싶었다. 집결장소에 가서 단원들과 어색한 만남을 하고 어떻게 친해져야 하나 혼자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일단 노래를 듣다가 계속 듣다가 스르르 의자에 누워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단원들 대부분이 도착해있었고, 수속을 밟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차여차하다보니 어느새 오타루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한국을 떠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삿포로에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공항에 도착.
설국. 삿포로의 첫인상은 그야말로 하얀 세상이었다. 눈부실 정도로.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밖의 풍경은 아직 때가 타지않은 순수한 어린아이를 연상케하였고, 그렇게 숙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시간가는 줄도 모르게 구경하다가 그새 잠이 들었다. 무지 피곤했다보다.... 그때는....
지금 기억하면서 써내려가고 있지만, 기억 속 시간이 뒤죽박죽 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항께 양해바란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할 때쯤 조장회의를 하였고, 숙소총괄자 및 관계자, 축제 관계자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본에 드디어 왔다는 실감이 든게 이 때였던거 같다. 회의가 끝난 뒤, 축제기간동안 입을 스키복과 장화, 장갑을 조마다 차례대로 배분받는 시간을 가졌다. 배분장소에 갔을 때는 이미 앞의 배분받았던 조가 퀄리티 높은 깨끗한 스키복을 가져갔다. 스키복 배분장소에 도착하여 스키복을 고를 때 무엇인가가 나를 부르는 염원의 소리가 들렸다. 일본에 와서인지 근원모를 소리 때문인지 이상하리만치 두근거리는 마음을 티나지 않게 부여잡고 주변을 요리조리 둘러보면서 소리의 진원지를 찾다가 스키복더미에서 살포시 숨어있는 노란색 스키복을 발견하고 조심스레 다가갔다. 소리는 점점 커졌고, 코 앞까지 가까이 갔을 때는 소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노란색 스키복이 있었다. 조원 모두가 자신에게 딱 맞는 스키복을 찾고 있을 때 나는 마치 아더왕이 바위에 꽂힌 엑스칼리버를 자신의 검인 것마냥 뽑았던 것처럼 노란색 스키복을 선택했다.
축제 복장을 지급받고 나서 숙소로 돌아오고 난 뒤 다음날까진 쏜살같이 시간이 지나갔다. 다음날 축제 회장 본부에 가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각 회장을 둘러보았다. 오타루라는 도시 전체가 축제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고, 마을 주민들까지 축제에 참여하여 설상을 제작하고 있었다. 축제기간은 10일? 정도였고 축제가 시작하기 전에 오코보도 설상을 제작하여야 했다. 출국하기 전에 엠티할 때 계획해 놓은 설상을 토대로 둘째날? 셋째날?부터 제작을 하였다. 설상을 제작하는 가운데 어려움도 있었지만 잘 해결하려고 노력하였고, 축제시작 전날에 다행히 완성을 하였다. 
 축제가 시작되면서, 저녁이 되기 전에 초를 정해진 위치에 놓고 불을 켰다. 눈과 촛불과 빛이 한데 어우려져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해냈고, 관광객들과 축제를 구경 온 사람들, 그리고 봉사단원들, 축제 관계자들 모두 이쁜 관경을 눈에 담으려고 하였다. 중간 중간 초의 열 때문에 눈이 녹아 설상형체가 변형되는 것을 보수하는 작업을 해주었고, 오브제들이 무사히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있는지도 틈틈이 확인하였다. 길거리마다 수놓인 초와 설상오브제를 바라보니라면 그 관경에 매혹되어 가만히 쳐다보는 경우가 빈번했다. 주변에 눈 때문에 초의 불빛이 갈무리되어 옹골차게 주변을 아름답게 밝혀주었고, 그 모습은 사진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직접 눈을 보고 느껴야만 느낄 수 있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존재했다. 그렇게 축제가 진행되다가 밤 9시가 되면 초를 끄고 본부에 집합하여 다같이 “수고하셨습니다.“하고 숙소로 돌아가 그날의 수고로움을 달래주었다. 매일같이... 그렇게 축제는 흘러갔고 마지막날 뒤풀이를 하였다. 한국 중국 일본 봉사단원들이 한자리에서 소통하면서 파티를 하는 것이다. 
일본 현지인들과 친해지려고 되지도 않는 일본어로 말을 붙이려 했고, 말이 막힐 때는 영어로 그것도 안되면 바디랭귀지로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소통. 소통을 하고 싶었다.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과. 다른 문화 다른 언어 다른 생활 다른 사고방식 이런 것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소통하려고 애썼다. 활동을 하면서 있었던 모든 일들이 내게는 너무 소중하고 또 소중한 기억들이고, 값진 경험이었다.
여담으로 나는 일본에서 얏삐로 통했다. 어느 샌가부터 나는 얏삐로 불렸다. 이름도 얏삐 별명도 얏삐가 되었다. (얏삐 : 즐겁거나 기분이 좋을 때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추임새)
후기를 두서없이 쓰다보니 처음에는 신명나게 일필휘지로 쓰다가 잠이 왔는지 점점 정말 간결하게 손이 그렇게 적고 있다. 이렇게 뱀꼬리처럼 힘없이 마무리 지어지는게 이 글을 읽는 모든이들에게 죄송스러워진다.
각설하고, 끝으로 오코보가 된 후로 있었던 모든 일들이 너무나 재미있었고, 출국날 처음으로 해외나간다는 설레임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설레임도 일본 현지에서 활동했을 때의 즐거움도, 숙소로 돌아와서 수고로움을 달래줬던 행복함도, 외국인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했던 모습도 모두 추억이 되었지만 내겐 다시 없을 추억이고, 소중한 기억이다. 


<4조 박범수>

내가 오코보에 대해서 알게 된 건 몇 년 전 일이었다. 일본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는 와중에 알게 된 오타루 자원활동단. 당시에는 불안과 걱정 속에서 지원서를 쓰던 펜을 내려놔야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내가 이번 14기에 지원하게 된 건 단순한 변덕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나는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고, 단지 한국에 돌아가기 싫다라는 마음이 앞서 근심 제치고 써낸 것이 오코보 지원서이다. 솔직한 마음이 통한 것인가, 나는 14기 단원으로서 오타루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여러 기회를 통해서 OB분들에게 많은 조언을 받았고, 기대에 부풀기도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오타루 눈빛거리축제에 참가한다는 실감을 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14기 다른 누구라도 그랬을 터.
오타루 현지에서의 생활은 심플하면서도 힘든 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준비하고 회장에 나가서 설상을 만든다. 해가 지면 촛불을 켜 길거리를 밝히고 밤늦게 돌아온다. 이 별 것 아닌 일상의 반복이 매일 반복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남들이 보면 지루하기 힘들기만 해 보이는 시간이겠지만 우리에겐 그 1분 1초가 아까울 정도로 즐거웠던 건 왜일까?
지친 몸을 이끌고 나가서 설상을 만들고 있으면 같이 일하는 현지 자원봉사원분들이 웃으며 말을 건내온다. 저녁에는 우리가 만든 설상 속에서 사람들이 웃으며 즐거워한다. 숙소에서는 같이 지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한다. 웃음이 함께했던 시간들.
물론 마냥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각자 고민도 있었을 지도 모르고,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그 시간이 더욱 보물같이 느껴지는 건 아닐까?
눈빛거리 축제 자원봉사단으로 갔다 온지 이제 2달이 다 되어간다. 그리고 모두에게 비밀로 오타루에 갔다 온 게 몇 일전이다. 우리의 설상이 있던 거리를 걷다보니 코끝이 찡해오는 걸 느꼈다. 눈이 속고 한산해진 그 거리에서 우리의 모습들이 겹쳐보였다. 우리가 함께 내딛었던 한 걸음 속에 많은 추억이 담겼던 걸 이제야 느낀다. 오타루에서 보낸 19일간,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러가서, 그보다 큰 행복을 얻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5조 허은경>

4월의 첫날. 오늘 낮은 한여름 같았고 산책로에는 꽃이 피어 있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 겨울은 물러갔지만 나에게 지난 2월은 어제처럼 때로는 꿈결처럼 밀려오곤 한다. 눈으로 한가득인 곳에 가고 싶었던 어린 날을 떠올리며 나는 오코보 단원이 되었다. 그리고 낯섦과 설렘이 맞닿아있던 오타루에서, 나는 우리가 되었다. 우리는 힘을 모아 아사리가와의 눈을 다졌고 내 키보다 더 높이 쌓여있던 눈으로 우리만의 설상을 만들었다. 우리가 빛으로 수놓았던 운하와 아사리가와의 설경은 나에게 평생 잊히지 않을 기억이 되었다.
오타루 뿐 아니라 그곳에서 새롭게 맺은 인연들 또한 내가 오타루에 가야만 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겨울을 지나 봄에도, 그리고 다음 겨울 또 그 다음 겨울이 찾아와도 오타루에서 맺은 인연들을 눈처럼 하얗게 오래도록 이어나가고 싶다.


<5조 오세운>

처음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출발했었던 오타루눈빛거리축제였다. 오타루라는 도시를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본 곳은 정말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었다. 정말 설상으로 사람들에게 눈호강을 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일은 축제 전 우리만의 설상만들기, 축제기간은 각 회장에 투입되서 축제 봉사, 끝난 후 자유여행 순이었는데, 18박 19일이 정말 알차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 만큼 함께 추억을 쌓는 시간이 정말 많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여기서의 목표는 나 자신을 정리하고 오겠다는 것이었는데, 잘 정리하고 왔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몇일밖에 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같이 잘 지내줘서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고, 일본, 중국친구들에게도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됐다는 점에 재밌었고 고마웠다고 하고 싶다.


<1조 김연현>

18박 19일 동안 저는 정말 많은 것을 얻고, 나누고,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곳이었다면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을까 생각합니다. 좋은 사람들과 나눈 추억과 축제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에서 오는 성취감은 저에게 또 하나의 보물이 되었습니다.
오코보 활동은 저에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특히 조장 역할을 하는 것은 더욱 그랬습니다. 즐거운 일들이 있는 만큼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힘든 날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원들이 옆에서 힘이 되어주고 많은 도움을 준 덕분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1조 조원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기회가 된다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오코보 활동을 하러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해요!


<1조 이현호>

오코보는 나의 첫대외활동 이었다. 3년전에 가본 훗카이도의 아름다운 기억 때문에 지원하게 돼서 정말 기대가 많았다. 오타루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뭔가 얼떨떨하고 짐정리하고 첫날은 금방갔다. 그 다음날 부터 본부에 가서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이것저것 숙지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설상을 만들고 보수하는 일은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눈이오고 비가오고 바람이 불고 힘들때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시간이 행복했다. 같이 간 오코보대원들이 좋아서, 응원해주는 주민들이 감사해서, 다른 나라 봉사자들과의 교류가 재밌어서, 풍경이 너무 이뻐서 일수도 있지만 무엇이 그렇게 행복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게 오코보만의 매력인거 같다.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했고 3주라는 시간이 금새 지나갔다. 다른 사람들에게 오코보에 대해서 추천할 말이 있다면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평생 기억에 남는 추억을 만들고 오는 단체라고 가서 꼭 느껴보라고 말하고 싶다 


14기 OKOVO 활동 후기 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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