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기 오코보 활동 후기 4탄입니다!
늦게라도 후기를 보내주실 분들은 skana0512@naver.com으로 제목은 ‘오코보 몇조 이름’으로 보내주세요(ex. 오코보 2조 신가나)
<1조 박승호>
<18박 19일 간의 한겨울의 꿈>
오타루, 지금 와서 들어도 가슴 뛰고 그리운 그 이름.
그때를 되돌아보는 지금, 난 마치 그 일이 꿈이었던 것만 같다. 한겨울의 꿈.
인천공항에서 신치토세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던 그때,
그때부터도 우리가 설국으로 떠나는 것을 알았던지 하늘은 눈을 뿌리고 있었다.
2시간 30여 분의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홋카이도. 비행기 창밖으로 내다본 그곳은 설국이었다.
그 설국에서 우린 참 많은 일들을 했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나하나 되새기기엔 너무 많은 추억들이 생겨버렸다. 장보기, 열심히 스노우캔들과 설상을 만들기, 쏟아지는 눈 속에서의 온천욕, 잊을 수 없는 삿포로 클래식과 진지한 대화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값진 것은 1조라는 소중한 가족을 만들어 준 것.
축제기간 중엔 늘 같은 일상의 반복과 혹독한 추위와 험난한 환경 속에서 생각보다 힘들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미화된 지금 그러한 것들까지도 모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특히 안타까웠던 점은 우리 1조에겐 다른 조들보다 많은 시련이 있었다는 것이다. 상처와 스트레스 등 말로 할 수 없는 것들도..
박살은 우리 1조의 구호였고 그 구호대로 참 많은 박살이 있었다. 그 점은 조금 안타깝게 생각한다.(이제 와선 그 박살이란 말을 즐겁게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그 속에서 우린 상처 주지 말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지금 와서 그때 찍은 사진들을 돌아보면 그곳에서 일상적으로 했던 것들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다. 늘상 먹을 수 있었던 삿포로 클래식(이게 가장 그립다..ㅠㅠ), 르타오 치즈케이크..(그곳에선 한 번도 못 먹어보고 한국에 사 와서 먹어봤는데 더 사 올걸.. 이라며 무척 후회했다), 윈켈에서의 장난과 때론 진지한 대화, 마음껏 눈 속을 걸을 수 있었던 점, 취향저격이었던 일본 음식들. 특히 우리 조는 피자와 인연이 깊었다 피자를 1만 엔이 넘게 박살을 내기도 했고 그 며칠 후에는 오타루 현지인들만이 아는 현지인 맛집에 가서 무척이나 맛있는 피자를 양껏 배 터지도록 먹었다. 그때 생긴 말인 '여병추'(여기 병수 추천)이란 말은 환상적인 단어였다. 또 갑자기 생각난 건데 마사스시의 환상적인 초밥을 먹은 게 정말로 좋은 추억이다. 미스터 초밥왕의 모티브가 되셨다는 그분. 그분이 직접 만들어주신 초밥의 향연은 영광스러웠다.
또한 일본 친구들과의 교류가 즐거웠다. 그동안 나 혼자서 공부해왔던 일본어를 실제 일본인과 대화에 사용하고 그것으로 의사소통이 된다는 점이 무척이나 나를 신나게 만들었다. 내가 조금 더 적극적이지 못해 일본인들과 생각보다 많은 교류를 못한 것은 아쉽지만 앞으로도 그 인연을 이어나가서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유여행 땐 아사히카와에 있는 아사히야마 동물원에서 가서 펭귄을 보기도 했고, 삿포로 호텔에서 철현이형의 생일을 축하하기도 했다.(삿포로에서 먹었던 무한리필 야끼니꾸는 결코 있지 못할 것이다. 그 억울했던 기억.. 우리는 음식 같지도 않은 것을 먹고 1만 7천엔 가량을 내야 했었다.. 그로 인해 억울하게 돈을 탕진한 우린 결국 삿포로의 야경도 보지 못하였다.)
훨씬 쓸거리가 많은 추억이지만 그 추억들은 어차피 이 후기글로는 담을 수 없는 것이기에 이걸로 끝맺음을 하려고 한다.
오타루에 언제 다시 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땐 더 나아진 모습으로 그곳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사랑하는 1조가 앞으로도 가족으로 좋은 인연을 맺어나갔으면 좋겠다.
<3조 정인영>
지인의 추천으로 이 단체를 알고, 너무나도 가고 싶었으며 새로운 경험을 쌓기 위해 지원한 Okovo의 활동은 나를 역시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오타루라고 하는 현실과 동 떨어진 도시에서의 18박 19일은 짧지만 나의 추억에 중요한 페이지로서 채워졌다,
많은 눈과 조용한 거리, 촛불로 가득한 이 거리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하였던 아무나 경험하지 못하는 추억과 광경을 선사 하였고, 전국에서 모인 다양한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끼어 들 수 있는 영광을 주었다.
특히 우리 3조는 더욱이 나에게 또 다른 가족이라는 형태로 남았고, 항상 이해해주고 다독여 주며 조언, 질책 그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이 내 삶에 조금이나마 끼어들어 주어 너무나도 고맙고 기회가 되면 내년에도 가고 싶다.
<1조 조지선>
대학교 졸업 후, 답답한게 싫었고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현실과 낭만의 사이에서 하루를 바득바득 보내던 그 때에, 우연찮게 OKOVO를 다시 보게되었다.
가고싶었다. 뭔가 달라질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그 때에 왠지 일본으로의 봉사활동이 내 인생의 큰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았다.
솔직히 걱정이 많았다. 그 때에는 버는 돈보다 써야할 돈이 많았고, 딱히 모아둔 큰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부모님의 손을 빌리기는 더더욱 싫었고, 나는 영상전문가도 아니고,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 것도 겁이 났고.
이후, 우여곡절 끝에 1월 28일이 되었다.
닫았던 캐리어를 몇 번씩이나 다시 열어서 짐을 확인하고, 냉장고에 넣어둔 김치, 소주들 혹여 잊고갈까 메모를 해놓고, 무게가 너무 많이 나갈까 몇 번씩이나 체중계로 무게를 재보고.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문이 열리고, 모여있는 장소로 이동할 때는 정말 긴장했었다. 아니 그 날은 그 후로도 계속 긴장된 상태였던거 같다.
선명히 기억나는 건, 짐이 많은 나를 안타깝게 쳐다보던 멤버들, 무게가 조금 오버해서 내 김치를 대신 가방에 넣어준 혜지, 짐 붙이는 걸 도와줬던 연현이언니, 비행기 안에서 건우오빠, 경민언니와의 어색했던 시간들 ..
사실 오타루에서의 하루하루가 전부 기억나는 건 아니다. 내가 영상특기자라서 다행이라고 느꼈던건, 기억력이 그닥 좋지 않은 내가 영상에 넣지 못하는 조각영상들을 통해서라도 그날들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
매일 가위바위보에 져서 한탄을 하고, 밤마다 맥주를 마시고 취하고, 노래를 들으며 늦은 밤의 아사리가와를 걷고, 아침을 만들어 먹고, 때로는 늦어서 허겁지겁나가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말장난을 치고, 나가사키야에서 장보면서 오늘 저녁은 무엇을 해먹을까, 내일 저녁은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고. 줄줄이 쓰기도 벅찰정도로 사소한 추억들이 많다.
특히 1조라고 부르고 지금은 가족이라고 말하는 우리 조원들.
클럽을 만들어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춤추고 노래를 부르고, 윷놀이를 하다가 피를 보고, 어딜 가던 무엇을 하던 꼭 하나씩은 박살을 내곤 했던 우리 조원들 덕분에 이번 오타루에서의 생활이 더더욱 재밌고 행복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 커튼을 쳤을 때, 눈 앞에 보이던 하얗고 아름다웠던 풍경은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떤 풍경보다 이뻤다.
날이 좋아도, 눈보라가 쳐도, 오타루의 풍경은 이쁘고 멋지고 감동적이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오타루에서 맡았던 겨울 냄새, 피부에 닿았던 눈의 촉감이 생생히 느껴져서 그리움에 힘겹다.
운하는 추웠고 사람이 많았고 물 위에 떠있는 불빛을 볼때면 다시금 센치해지곤 했다. 테미야센에서는 하루하루 우리가 만든 설상이 녹아가는 것을 보며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아사리가와에서는 다리위에서 강물의 소리를 들으면서 오타루에서의 하루를 되새기곤 했다. 영상특기자로 다녀왔기 때문에 일에 대한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그대신 나는 사람들이 스노우캔들을 만들고 불을 붙이면서 그 얼굴에 지어져있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내년에는 나도 그 사람들 사이에서 눈을 다지고, 스노우볼과 스노우 캔들을 만들고, 불을 붙이고 싶다.
아마 올해의 뜨거운 여름에 추운 겨울이 그리워진다면 오타루에 남기고온 OKOVO 사람들과의 추억과 다이다이, 에볼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기억들이 그리워서 내년 겨울도 스키복을 입고 오타루의 거리를 걷고 있지 않을까.
사실 이번 봉사활동이 내 인생의 커다란 터닝포인트가 되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돈에 시달리고, 취업을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는 백수다. 그렇지만 오타루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은 생각만으로도 나를 미소짓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내년을 기다리게 하는 나름의 원동력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어설픈 요리를 맛있다고 먹어주고, 매일 아라시 노래를 불러도 잔소리도 안하고 그러려니 이해해주고 나중에는 다같이 따라 불러주던, 그리고 아직도 카톡 단체방을 활기있게 만들어주는 우리 1조 가족모두에게 고맙다고 전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