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좋아했다.
눈이 잘 내리지 않는 곳에 살아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한겨울 창밖에 눈이 내리는 걸 보게 되면
자고 있는 가족들을 전부 깨워 눈이 온다고 신나 했다. 만사 제쳐두고 쌓인 눈을 밟으며 볼이 붉어질 때까지 놀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눈에 대한 환상은 그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군대에서는 잠 못 자가며 눈을 치워서 싫어질 법도 한데도 (사실 약간 싫었음) 전역하고 난 뒤 여행을 갈 설국들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오코보 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고 2017년도에 15기로 처음 참가하였다. 해외가 처음이었던 나는 모든 게 신기했다.
지나가는 거리에 들리는 언어도 낯설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새롭고 흥미로웠다. 그땐 내가 막내였는데 같이 간 형, 누나들이 너무 잘해주고
진짜 정신없을 정도로 신나게 노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그때의 추억을 내내 되뇌며 그리워하다가 3년 뒤에 18기로 가게 되었다.(보고 싶어요~!15기 3조!)
당연하게도 OB로 참여하게 되었고 3년 만이라 잘 기억이 나질 않아서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머리에서 꺼내느라 꽤나 낑낑댄 기억이 난다.
18기 단원들도 정말 다들 착하고 성실하고 일 중에도, 윈켈에서도 하루하루 즐겁지 않은 날들이 없었다. (보고 싶다~18기 2조~!)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3년간 정체기를 가지고 2023년 19기로 다시 가게 되었다. 이때는 솔직히 갈 생각이 없다 쪽에 가까웠는데
어느새 비행기에 몸이 실어져 있었다고 보는 편이 좋겠다. 사실 그렇다고 하기엔 가기 전에 이미 요리 포지션을 맡을 생각으로 해줄 만한 요리들을
선별하고 오타루의 맛집들을 기억을 더듬어서 정리도 하고 그랬다. 책임감, 부담감, 기대감 요런 것들이 섞인듯하다!
처음 오타루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것이 마냥 신기했고, 3년 뒤에는 익숙했고, 또 3년 뒤에는 그리웠다.
나는 오타루를 항상 겨울에만 와봤고 나에게는 항상 겨울인 곳이었다. 이번에도 당연한 듯이 하얀 눈들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이곳에 있으면 핸드폰도 잘 안 보게 되고 현생에 있던 골치 아픈 걱정들이 잠시 동안 사라지는 것 같아서 한결 가뿐한 내가 될 수 있었다.
일할 때는 내가 만지고 있는 하얀 눈처럼 하얗게 아무 생각 없이 일을 할 수 있어서 홀가분했고 (조금 추웠지만), 일이 끝난 뒤 숙소에서 2조 사람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조원들과 함께 온천도 가고 맛집 허탕도 치고 막내 생일 축하도 하고 술도 마시고.. 너무나 착하고 배려심 깊은 조원들 덕분에 숙소는 항상 따듯한 분위기로 활기넘쳤고
그 조원들고 함께 이런저런 경험들을 한것들이 너무 감사하고 기쁜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오타루에서 돌아오고 나면 항상 눈이 그리웠는데 이번에는 숙소에서 별거 아닌 일상들이 그리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라디에이터의 훈훈한 공기와 스피커에서 나오는 잔잔한 노래, 누군가는 머리를 감고 누군가는 양치를 한다 누군가는 밥을 지어서 얼려두기 위해 배분을 하고 누군가는 머리를 말리고 있다 또 누군가는 창밖에 내리는 눈을 감상 중이고.. 누군가는 아침을 먹고 있고.. 뭐 이런 일상들을 지켜보고 싶다는 그리움..?
항상 참여하기 전에는 고민으로 가득 차 있지만 막상 가게 된다면 소중한 기억을 꼭 쥐고 돌아온다.
오코보라면 누구나 오타루의 눈을 마음속 소복이 쌓아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