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고 봉사하러 간다는 이상한 사람들]
대학 졸업을 앞두고 교육 실습에 절절 매면서 무슨 정신으로 신청을 했는지 모르겠다.
80만원이 대학생에게 껌값도 아니었고, 졸업을 하면 동기들과 함께 중국여행을 갈까했던 자본이었다. (코로나로 꿈도 못 꾸게 되었지만)
다만 개인적인 소망으로는 그냥 군중 속에서의 적당한 고독도 느끼고, 보통 며칠간 관광객이 으레 가지는 사명으로 바삐 지나쳐 봐야만 하는 풍경이 아닌 2주여간의 눈 덮인 일본 소도시의 풍경을 지긋-이 오-래 바라보고 싶어서 신청했다.
결과적으로 반은 맞고 반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희망했던 고독을 느낄 틈은 아주 찰나였다. (이제 생각해보면 당연한 구조였다.)
제각각 나이도 사는 곳도 다른 사람들이 뜻을 하나로 모아 땀 흘려 설상을 만들고 장을 보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이야기를 나누고 취향을 나누고, 또 동일하지만 국적이 다른 이들(일본,대만)과 통역과 파파고로(심지어는 바디랭귀지까지 섞어)이야기를 나누고 밥 그릇과 술잔을 부딪히며 내일을 도모하다보니 고의로 자처하지 않는 이상 고독은 개뿔이...
하지만 예상치 않게 이런 자세들을 얻게 되었다.
첫째는 문화적 개방감이 성장한다.
짧게는 동북아시아사에 대해 현대 청년으로서 보다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가 생겼다.
포세이돈이 바다 사이를 저 멀리 갈라놓는 이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결국 가장 밀접한 대만과 일본에 얽혀있는 아픈 과거에서 어떤 자세로 대화해야 딛고 서로 성장할 수 있는지 고려하게 되었다.
글로벌 시대라 하면서 사실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인 대만이나 일본 보다는 저 멀리 미국 이슈들에 더 주목해왔던 것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대만이나 일본과 관련된 뉴스가 보이면 한 번 더 클릭하게 되었다.
둘째는 내 자신이 한국인이란 점이 어쩌면 괜찮을지도 싶어진다.
괜히 문화 강국이 아니다, 그 덕을 나가서 여실히 본다.
(또한 실질적으로 현장 일머리도 극강의 효율을 중시하는 한국인 버프로 뺑글뺑글 잘 돌아가는데, 이것 또한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생각보다 그들은 불닭볶음 크림우동을 곧잘 먹길 좋아하고(매워하는 이들도 간혹가다 있었는데 이게 희열이다. 뭐랄까.. 봤냐?... 이게 한국인의 매운맛이다! 우하하! 같은 뒤틀린 맵부심..), 뉴진스의 하입보이를 함께 부르고 추며 즐기고, 현지에 나는 재료로 김치를 만들어 보길 원했고,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 이야기를 나누고, 정성스레 만든 요리를 교환하고 그리고 서로 좋아하는 노래를 추천할 때 표정에 기대감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의 눈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당신도 좋아하길 바랍니다.' 하는 마음이 읽힌다.
언어의 형식적인 틀을 넘어 본질적인 마음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누린다.
그리고 먼저 희망한 소망를 넘어, 일본 소도시에서 눈으로 새 하얗게 뒤덮인 풍경은 지긋이 오래 볼 뿐만 아니라 아침과 낮 그리고 밤내내 느끼고 만지는 일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험은]
가치 있다.
외려 저렴하다.
(싸다 싸!)
좋아하는 것들이 잔뜩 늘어나게 되었다.
대만에 그렇게 괜찮은 밴드음악 맛집들이 있는 줄 몰랐는데 좋아하는 장르가 생겼다.
문득문득 생각나는 일본 맛집들이 생겼다.
가족과 친구랑 보고 싶은 설경이 생겼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인스타로 대만, 일본 친구들과 안부를 나누게 되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조금은 마음에 들어졌다.
동거동락한 사람들을 얻게 되었다.
오타루 설경이 일상이 되어 그리워진다.
[현생으로 돌아와 커리어적인 방향으로는 이렇게 도움이 될지도요?]
마케팅 - 작은 지역축제를 어떻게 전세계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지, 어떻게 마케팅하는지
축제기획 - 축제를 어떤 식으로 기획하는 지, 무슨 단체나 얼마나 자본 규모가 필요한지
무역 - 어떤 물건들이 한국/일본에서 먹힐 것 같은지
해외영업,언어특기자 - 여기서 만든 인프라를 토대로 비즈니스 언어능력을 키워봅니다..
영상/사진 - 좋은 소스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등등 단체협력을 요하는 모든 직무에 전반적으로 자소서에 대외활동으로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활동에 진심으로 임해야 이런 것들을 얻어 갈 수 있습니다.
[삶에 있어서 풍요로워 집니다]
살아오면서 사실 디저트에 열광하는지 도통 이해를 못 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밥 다 잘 먹어놓고, 왜 또 달달구리한 푸딩이나 케이크를 먹으려는지.
하지만 이제는 이해합니다.
오코보라는 여정은, 아주 좋은 디저트 입니다.
꼭 살아가는데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삶을 확실히 달콤하고 풍요롭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홋카이도는 대-낙농업지로 우유와 디저트가 유명하여 디저트가 댕 맛있습니다. 나 진지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