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대도 큰 걱정도 없이 출국했다.
도착 후 익숙지
않은 환경과 사람들에게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한국에서 걸려 온 친구들의 전화가 너무나 반가워서
잠깐은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물론 아주 잠깐이었다.
사실은 점점 집에 가기가 싫었다!
밤마다 2조 가족들과 함께 술을 나눠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그때의 분위기를 잊을 수 없다. 설상을 제작하면서도, 스노우캔들을 만들면서도, 토치로 불을 붙이면서도 빨리 밤이 되어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항상 들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오타루, 그리고 오코보의 낭만에 잔뜩 취해갔다.
언젠가 2조 가족들과 함께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에 대한 대화를 나눈 기억이 있다.
나 역시 오코보
활동 기간 동안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여럿 있었다.
특히 축제가 시작되고
로테이션을 돌던 첫날, 테미야센에서 보낸 순간순간은 손에 꼽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테미야센에서 눈뭉치로
모양을 만들며 나눴던 대화 덕인지,
나를 칭찬 감옥에
가둬버린 치바상 덕인지,
내가 만든 트리
모양 눈 장식 앞에서 사진을 찍던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의 미소 덕인지,
처음 사귄 대만인
친구와 함께 로소쿠의 불을 끄며 나눴던 짧은 대화 덕인지,
그냥 기분이 좋아서
그랬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완벽했다.
나는 이날 살아
있음을 충분히 느꼈다.
사실 돌이켜보면
모든 순간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 시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2조 숙소 창문 앞에 쌓인 눈 속에 맥주를 넣어두고 꺼내 마시던 시간도,
매일 아침 함께
출근 사진을 찍던 시간도,
한 명씩 돌아가며
열심히 일기를 쓰던 시간도,
마니또를 맞추며
웃음이 끊이질 않던 시간도,
세븐일레븐까지
오가던 시간도,
출국 전날 아침에
숙소에 혼자 남아 창밖을 바라보던 시간도,
출국 날 새벽에
일출을 보러 바다에 갔단 시간도,
모두 소중한 시간으로
남았다.
그래도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이 모든 시간을 함께한 오코보 19기 단원들이겠지.
그래서 나는 내년에도
오코보 단원들과 함께 또 한 번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들을 경험하기 위해 오타루에 가려고 한다.
모두 내 머릿속에, 그리고 내 사진첩에 차곡차곡 담아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