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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그곳에선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2014-04-09 11:39:51   , 1574 조회

written by 12윤진희

   http://www.hani.co.kr/section-021005000/2006/02/0210050002006021505970… [604]

그곳에선…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블랙블루의 도시’ 오타루에서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생각함 영화 <러브레터>와 청어잡이의 추억, 운하와 창고가 명물


▣ 오타루= 글 황자혜 전문위원 jahye@hanmail.net<b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오타루는 블랙 블루의 도시다. 소박하지만 하찮지 않고, 오래됐지만 낡지 않았다. 오타루는 전통과 현대의 공간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그래선지 오타루 시내를 걷다 보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뜻밖에 건네받은 한글판 관광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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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따라 길게 누운 오타루 시내의 묘미는 어느 골목에서나 바다가 잘 내려다보인다는 점이다.

삿포로에서 오타루로 향하는 연안철도는 시원스럽기 그지없다. 겨울 갈매기의 힘찬 날갯짓처럼 푸드덕거리며 달리는 열차 안에서의 설렘. 서른 즈음에서 훌쩍 마흔에 가까워져버린 사람, 마흔 고개를 넘은 사람, 오타루가 처음이 아닌 사람까지도 안달복달하게 만드는 오타루의 정체는 뭘까.

오타루역에서 제일 먼저 만난 이는 시청 경제부 관광진흥실 와타나베 가즈히로(41). 공무원 생활 17년째로 지역 토박이인 그에게서 건네받은 건, 뜻밖에 한글판 지도인 ‘나들이 오타루’와 관광안내서 ‘영화 <러브레터> 로케지를 찾아서’였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처럼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당혹스런 안내지의 행간들이 오히려 따뜻한 웃음을 자아내고, 타국에서 받은 한글판 안내서는 고향의 진한 대추향처럼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역을 나서자마자 왼쪽에 있는 ‘산가쿠시장’을 지나 눈길 위를 조심조심 걸어 언덕길을 올랐다. 가파른 경사들이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가는 미끄럼틀 같다. 미끄러지는 통에 영화 같지 않은 현실에 산통은 깨져도, 연애편지를 더듬어가는 언덕길은 아직껏 숨차도록 뜨끈한 어떤 것이 있는 모양이다. 그때였다. 뒤를 돌아보라며 와타나베가 가리킨 팻말은 영화 속 그대로 ‘후나미자카’. ‘배를 바라다보는 언덕’이었다. 그리고 그 언덕길을 미끄러져 내려간 시선 끝에 바다가 한가득 밟힌다.  

‘구일본 우선주식회사 오타루지점’ 건물은 <러브레터>에서 도서관으로 등장했던 곳이다. 오타루시 박물관이었다가 현재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됐다. 건물로 들어서자 한국어를 한창 공부 중이라는 자원봉사 할아버지가 “감사하므니다”를 연발한다. 밖으로 나오니 오타루 운하 주변의 창고촌 공장 지붕에 올라가 눈을 치우고 있는 일꾼들이 일제히 손을 흔들어준다. 그랬다. 오타루는 또 괜스레 손을 흔들어주고 싶은 곳이다.


운하 지키기, 근대화 시정책에 맞서다


오타루에서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곳이 운하다. 와타나베는 “한국에서 광고 촬영을 왔다가 다른 곳에 못 가니까 운하에다 대고 ‘오겡키데스카’ 하는 스태프들을 본 적이 있다”며 웃었다. 20세기 초반 오타루는 청어잡이의 중심지였다. 청어를 가득 실은 배는 항구를 거쳐 이곳 운하로 들어온 뒤 창고에 고기들을 내려놓았다. 원래 유리공예는 ‘우키다마’(어선의 램프)를 만드는 곳이 오타루가 전국에서 유일하다는 데서 비롯했다. 게다가 메이지시대 ‘100만억 시대’라 불릴 정도로 청어잡이가 한창이었는데, 청어는 먹는 생선이라기보다는 ‘니싱가스’라고 불리는 일본 농가에서 쓰는 비료였다. 돈이 되는 생선이었던 셈이다. 이때 만들어지는 ‘어유’가 ‘우키다마’를 밝히는 기름이 되었으니 유리공예와 청어잡이와 운하는 한 지붕 세 가족이었다.

지금 운하와 창고는 애초의 용도를 잃고 새로운 용도가 이전보다 훨씬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운하와 창고가 이전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에는 우여곡절이 있다. 1966년 오타루시는 시내 교통체증을 줄이고 항구를 근대화한다는 명목으로 운하를 메우고 6차선 간선도로를 뚫는 계획을 세웠다. 운하가 메워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주부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오타루 운하를 지키는 모임’이 결성된 것은 1975년. 악취 나는 운하를 청소하고, 거리 연설과 신문 발행 등의 대중운동이 시작됐다. ‘오타루 운하 연구강좌’를 열어 전국 유명강사가 참가하도록 하면서 동참하는 시민들이 늘어났고 문화축제를 통한 선전전이 새로운 행동의 촉진제가 됐다.



△ 오타루 운하는 공존의 미학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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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레터>에도 등장하는 유리공예의 현장.



토론과 협상, 투쟁 과정은 그 뒤로도 20년 동안이나 계속됐다. 1986년 완성된 도로는 운하의 폭을 반으로 줄여놓았지만, 운하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대신 그동안의 논쟁 과정이 일본 내에 알려지면서 이곳은 일약 유명 관광지가 됐다. 창고도 외형은 그대로 살리고 내부만 리모델링하는 과정을 통해 현대식 주점과 식당으로 탈바꿈해 관광객을 맞고 있다. 시내 중심에 위치한 일본은행 구 오타루지점 금융자료관이나 오타루 베인 등은 오래된 건물이지만 내부만 리모델링해서 그대로 쓰는 역사적 건조물들이다. 오타루시는 이런 노력을 통해 오타루시 전체 공간의 통일성을 기하고 있다는 게 와타나베의 설명이었다.

유리공예를 눈으로 체험할 수 있는 ‘오타루 운하 공예관’은 오징어 눈두덩이 같은 독특한 돔 양식 때문에 멀리서도 눈에 띈다. 공예관 지하로 내려가면 섭씨 1천도의 가스 가마와 녹아내릴 듯한 결석이 투명한 유리로 세상에 태어날 준비를 한다.  

  

눈빛 축제의 백미는 눈길 걷기

<러브레터>의 둥글고 빨간 우체통 앞에서 와타나베는 <일 포스티노>를 연상시키는 포즈를 취했다. 시 청사에 들어서자 ‘유키 아카리(눈빛)의 길’ 축제를 준비하는 시 공무원들과 15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오타루시 직원 니시모토 유스케(25)의 맑은 미소는 눈축제 때 밝혀질 스노 캔들만큼이나 빛났다. 올해로 8회째를 맞이하는 이 행사는 보통 50만 명 안팎의 관광객이 몰린다. 2월10일부터 19일까지 오타루 운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행사의 백미는 산책로와 가스등이 놓인 눈길을 걷는 것이다. 연꽃을 닮은, 운하 표면에 피어나는 얼음 균열인 ‘하스하 고오리’도 놓치기 힘든 광경이다.
스시의 나라 일본에서도 오타루 스시라고 하면 알아준다고 한다. 취재진도 초밥집 130개가 몰려 있는 ‘스시도오리’로 발길을 옮겼다.
 
작성자 - 박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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